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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10> 보이스 피싱 의심사례 봤을때

낯선 이 휴대폰 너머 ‘그 놈 목소리’…허투루 지나치지 않은 ‘착한 오지랖’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03 19:37:45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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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내 아들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에 따르면 전북 순창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A 씨는 검사와 수사관을 사칭한 보이스 피싱 사기단에 430만 원 정도를 뜯기고 사흘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나는 절대 보이스 피싱 당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런 믿음이 허술하게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기사를 쓰고 있는 작가도 2011년 보이스 피싱에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주변에 “그거 보이스 피싱 같은데, 얼른 끊으세요”라며 따뜻한 참견을 해줬던 이웃이 있었다면…. 청년 A 씨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목숨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 보이스 피싱범과 통화하는 척
- 은행 ATM기 앞 서성거리며
- 통장 계좌번호 ‘복명복창’

- 힐끗 힐끗 쳐다보는 시민들
- 작가에 다가와 “전화 끊어라”
- 보이스 피싱 알아채고 도움 줘
- 행원 직접 찾아가 알려주기도

- “나도 당할 뻔” “돈 확인해봐”
-‘따뜻한 참견’에 안심된 하루

■보이스 피싱범과의 통화

   
지난달 24일 부산 연제구 한 은행에서 시민 박정희(오른쪽·57) 씨가 부산온 ‘부산사람 실험 카메라’ 촬영 중인 국제신문 신지영(왼쪽) 작가에게 “보이스피싱 조심하라”며 경고하고 있다. 동영상 캡쳐
작가는 부산온 ‘부산 사람 실험 카메라’의 상황 설정을 위해 2011년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당시 검사라고 사칭했던 그의 이름도 A 씨에게 사기를 쳤던 ‘김민수’였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내 계좌가 도용돼 대포통장으로 범죄에 쓰이고 있다는 말.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김민수 검사’가 “대포통장 탓에 네가 용의 선상에 올랐다”며 검찰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알려준 대로 검찰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건 번호를 입력하자 떡 하니 적혀 있던 내 이름. 그 후에는 그의 지시에 따를 뿐이었다. 절대 전화를 끊지 말고,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OTP 번호를 알려달라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그러나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이성을 잃었다.

다행히 작가는 하루 한도 금액이 정해져 있어 이것을 해결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이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아 그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피해 금액은 은행 수수료 2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경험은 누구나 보이스 피싱에 당할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영상 콘티와 영상에 필요한 내레이션을 써 내려갔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9년 동안 진화한 수법으로 더욱더 많은 사람이 보이스 피싱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촬영일을 지난달 24일로 정했다. 작가가 보이스 피싱 피해자 역을, 서종영 인턴기자가 보이스 피싱범 역할을 맡았다. BNK금융그룹의 자문을 받고 도움도 얻었다.

부산은행 교대역지점 ATM기 앞에서 촬영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 김민수 검사입니다. 신지영 씨?” 9년 전 쩔쩔맸던 그놈 목소리. ‘김민수 검사’역을 맡은 서 기자는 “대포통장에 ‘신지영’이란 이름이 도용돼 범죄에 사용이 되고 있다”며 연기를 시작했다. 서 기자는 내게 “검찰청임을 확인시켜주겠다”며 홈페이지 주소를 차근차근 불러주었다. 작가는 주변 시민이 상황을 알아채도록 하기 위해 홈페이지 주소를 ‘복명복창’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행인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건지, 자기 일이 바쁜 것인지 작가의 전화 통화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실험 카메라 실패를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그거 보이스 피싱 아니야?”

   
이때 한 아주머니가 작가를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박정희(57) 씨는 내게 “그거 보이스피싱 아니에요? 끊으세요”라고 말했다. 굉장히 단호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박 씨는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얼른 은행으로 가서 해결하세요”라고 설명해줬다. 우선 전화를 끊었다. 박 씨가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작가는 “아니, 검찰청인데…”라며 말을 이어 가려 하자 박 씨는 말을 끊고 “보이스 피싱”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는 “일단 모르는 번호는 다시 받지 말고, 은행에 들어가서 ‘검찰에서 돈을 요구한다’고 말한 후 은행에서 시키는 대로 해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박 씨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한 뒤 은행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작가를 따라 들어와 은행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함께 설명하고, 놀란 작가를 “괜찮다”며 안심시켜줬다. 따뜻한 박 씨에게 감동한 작가는 취재 사실을 밝히고 도움의 이유를 물었다. 박 씨는 “스스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 때 제 3자가 알려줘야 한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씨를 보낸 후 다시 연기에 몰입했다. 작가는 연출대로 보이스 피싱범이 계좌이체를 시도하라는 지시에 ATM기 앞에 섰다. 그때 70대 여성 B 씨가 작은 목소리로 “그거 보이스 피싱 같아”라고 말했다. 작가가 “뭐라고요”라고 재차 묻자 B 씨는 “보이스 피싱”이라고 대답했다. B 씨와 함께 수화기로 보이스 피싱범의 목소리를 들은 B 씨의 딸은 “당장 은행 가서 물어보세요”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줬다. 그 후 자리를 뜨던 B 씨와 그의 딸은 작가가 은행 직원에게 신고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후 떠났다.

급히 달려가 취재 사실을 알리자 두 사람은 그제야 심각했던 표정을 풀었다. 자기 일처럼 안심하는 듯. B 씨는 “나도 예전에 보이스 피싱 전화 몇 번이나 받아봤어. 나는 부산 사는데 서울 서초경찰서라고 하길래 보이스 피싱인지 바로 알아챘다”며 “‘당신 다 사기꾼이지’라고 호통친 후 끊어버렸지”라고 무용담을 소개했다.

■“나도 당할 뻔했었지” 공감

이번에는 사례를 바꿔 ‘문자 피싱’으로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로 했다. 피싱범은 “청소기 결제 금액으로 87만3000원이 잘못 결제됐다. 돈을 돌려주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피싱범이 시키는 대로 작가가 계좌번호를 불러주던 그때였다. 옆에서 통화를 유심히 듣던 조행염(74) 씨가 작가에게 “어디서 전화 온 겁니까”라고 묻더니 “나도 한 번 당할 뻔했다. 계좌번호를 알려주기 전에 한 번 더 알아봐라”고 말했다. 작가가 “이거 혹시 보이스 피싱이냐”고 묻자 조 씨는 “그런 것 같다. 나도 한 번 당할 뻔했다. 계좌번호 알려주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옆 창구에서 볼일을 보던 70대 C 씨도 거들고 나섰다. “전화 끊지 말라고 하죠?”라는 물음에 작가가 그렇다고 하자 곧바로 “사기꾼이다”고 확신했다.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상황을 은행 직원에게 알려 도움을 준 경우도 있었다. 60대 D 씨는 작가의 통화를 듣고 은행 안으로 휙 들어갔다. 계속 연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은행 직원이 와서 “저 아주머니께서 혹시 보이스 피싱 당하는 거 아닌지 봐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D 씨는 작가에게 “비밀번호 알려줘서는 절대 안 된다. 어서 돈 빠져나갔는지 확인해라”고 채근했다. 작가가 취재 사실을 털어놓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보이스 피싱인 건 알겠는데 말을 하면 안 들을까 봐 은행 직원에게 알렸다. 나보다 전문가가 말하는 게 설득력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함께 촬영을 지켜본 부산은행 강경영 전문직원은 “정부 기관은 개인에게 직접 전화하지 않는다. 만약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 등에서 전화가 오면 먼저 의심부터 해야 한다”며 “일단 전화를 끊은 후 해당 기관에 전화해서 확인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신지영 작가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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