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부산 동구 산복도로. 큰 길에서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접어들어 20여m 가니 작은 대문이 나왔다. 옅은 회색 외벽의 단층 주택과 갈색 나무 덱이 놓인 작은 마당은 한눈에도 깔끔해 보였다. 흰색으로 마감된 집 내부는 햇빛이 쏟아져내려 한층 밝아보였다. 세 개의 방은 파스텔톤 벽지로 단장됐으며, 화장실은 둘이서도 샤워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아이고, 솔직히 내가 이런 집에서 난생처음 살아봤습니더. 아직도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애가 이전에는 부끄럽다고 생일파티도 밖에서 해달라고하더만 얼마 전에 친구를 5명이나 데리고 오더라고예.”
이곳은 정은(가명·13)네 집. 정은이와 할머니(81)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온 벽면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핀 전셋집에서 살았다. 씻는 공간은 한 명이 몸을 돌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고, 주방 개수대에선 물이 넘쳐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매번 더러워진 물을 다용도실 하수구에 갖다 부었다. 하지만 그런 집마저도 계약이 만료돼 지난달 나가야 할 처지가 됐다. 친척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이사갈 집을 구했지만, 천장이 무너지고 벽엔 곰팡이가 핀 데다 방문 손잡이가 모조리 떨어져 큰 돈이 드는 수리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이런 사연이 국제신문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정은네 집에 수리비 500만 원을 지원해 무너진 천장을 보수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마쳤다. 달라진 건 집뿐만이 아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정은이는 전에는 집이 낡았다며 늘 투덜댔고, 하교 후에도 느지막이 돌아와 휴대전화만 들여다봤다. 하지만 이제는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 정은이 할머니는 “애 방 만들어주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뤘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국제신문과 공동으로 기획한 ‘10대의 빈곤’(국제신문 지난 9월 3일자 1면 등 보도)에 등장한 아이들의 주거지원을 시작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사업을 추진하며 확보한 후원금 1억1000만 원 중 지금까지 다섯 명의 아이에게 모두 5500만 원의 주거비(개·보수 비용 혹은 전세보증금과 월세)가 지원됐다. 이후에도 이사가 확정되는 대로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보도 이후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어린이재단에 쇄도했다.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여승수 부산지역본부장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10대의 빈곤 환경이 알려지면서 추가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의 물리적 생활환경만 바꾼 것이 아니라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관심이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