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합원 명의 도용해 병원 세우고

- 법망 피해 악용하는 사례 줄이어

- 의료계 “설립 인가 제한 둬야”

부산에서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악용한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의료생협을 빌미로 이른바 ‘사무장병원’을 설립해 건강보험 요양 급여를 챙기거나, 조합원이 출자금을 떼이는 사건이 반복된다. 이에 따라 의료생협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관련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장경찰서는 의료생협 명의로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요양 급여 160억 원가량을 가로챈 혐의(의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A(61) 씨를 구속하고, 전처 B(53)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2011년 10월 조합원을 허위로 등록하고 출자금을 대납하는 수법으로 설립된 의료생협을 6000만 원에 인수한 뒤, 같은 해 12월 B 씨를 이사장으로 등기했다. A 씨 등은 그해 12월 29일부터 지난해 8월 20일까지 생협 명의로 해운대구에 요양병원 2곳을 개설하고, 이를 사무장병원 형태로 운영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60억 원가량 요양 급여를 챙긴 혐의를 받는다.

비의료인이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러나 정상적 방법으로 설립된 의료생협은 예외다. 의료생협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에 따라 조합원과 지역 주민에게 저렴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개설되며, 부산에 10곳이 있다. 출자금 1억 원 이상, 조합원 500명 이상이면 비의료인도 지자체 인가를 받아 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그러나 비의료인이 애초 의료기관을 운영하려고 불법적으로 의료생협을 설립하고 사무장병원을 개설해 요양 급여를 받는 건 명백한 법 위반이다.

지난 6월 부산 한 대형 의료재단 이사장이 의료생협을 통해 요양병원 5곳을 개설하고, 10년 넘게 건강보험 급여 수천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2월에는 가족·지인·조합원을 동원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의료생협을 설립한 뒤 사무장병원 4곳을 9년간 운영한 부부가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여기에다 기장군 한 의료생협 조합원들은 생협 인가가 취소됐는데도 출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생협 이사장이 불법으로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혐의 등으로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생협법상 출자금을 조합원에게 반환해야 할 강제 조항은 없는 탓이다. 

문제가 잇따르자 관련 법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정한 목적으로 지자체에 의료생협 설립 인가를 신청해도 담당 공무원이 조합원 가입서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생협을 이용해 병원을 비롯한 필수 공공시설을 만드는 것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 한 의료생협 병원 퇴직자는  “의료생협 병원이 불법적 방법과 과도한 투자로 사상누각을 만든 뒤 망해도 현재로서는 피해자들을 구제할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