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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년이 뛴다 <2> 신중년의 애환 ‘황혼육아’

손주 돌보는 ‘할빠(할아버지+아빠)’ 절반은 양육비 안 받고 ‘무급 봉사’

  • 황윤정 기자 hwangyj@kookje.co.kr
  •  |   입력 : 2019-09-04 19:54:05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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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 내외 맞벌이 하느라 고생”
- “못 미더운 어린이집 맡기느니”
- 손자 손녀 양육 떠맡는 신중년
- 고령의 부모까지 돌보면서
- 평생 부양 책임 ‘샌드위치 세대’

- 38%만 정기적으로 양육비 받아
- 받은 경우도 월 평균 70만 원 선
- 지자체 지원은 중복 수당 우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사는 박정수(61·가명) 씨는 일주일에 사흘 동안 아내와 함께 생후 23개월 된 손주를 돌본다. 지난해 은퇴한 후 맞벌이를 하는 딸과 사위 대신 손주를 봐주는 것이다. 소위 ‘할빠(할아버지+아빠)’다. 박 씨는 “딸이 힘들게 공부해서 취업했는데, 마음 편히 직장 다니라고 아이를 봐준다”고 말했다. 박 씨 부부는 ‘수고비’ 명목으로 약 50만 원을 받는다. 사흘을 뺀 나머지는 사돈이 아이를 돌보는 터라 수고비도 반토막이 됐다.
   
신중년 세대는 자식과 부모를 동시에 부양하는 것은 물론 ‘황혼 육아’까지 떠맡고 있다. 사진은 손주를 데리고 마트에 장을 보러 온 신중년 부부의 모습. 박수현 선임기자
박 씨는 노모까지 부양하고 있다. 올해 95세인 어머니는 2년째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어머니 병원비만 한 달에 100만 원에 달한다. 박 씨는 “형제가 30만 원씩 내고, 어머니의 노인기초연금 30만 원까지 더해 한 달 100만 원의 입원비를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의 두 자녀 중 한 명은 28세가 넘어서야 겨우 직장을 구했고, 나머지 한 명은 서른 살이지만 잦은 이직으로 인해 현재 ‘무직’ 상태다. 박 씨의 주 수입원은 30년 이상 납부한 국민연금이다. 매달 100만 원가량의 연금에다 손주 양육비 50만 원이 박 씨 수입의 전부다. 나머지 생계는 그 동안 모아둔 돈으로 이어가고 있다. 박 씨는 “평생 가족 뒷바라지만 하다가 여생을 마칠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맞벌이 부부 80%는 조부모에 의존

신중년(50~69세)은 부모와 자식을 모두 부양해야 하는 ‘샌드위치 세대’이기도 하다. 고령의 부모를 돌봐야 하는 데다, 청년실업률이 높아 장성한 자녀까지 뒷바라지해야 하는 처지다. 여기에 자식이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도 경제적 도움을 받거나 손자·손녀를 양육해달라는 경우도 늘고 있다.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황혼 육아’는 신중년의 키워드가 됐다.

지난해 부산시와 부산복지개발원이 표본 가구원 49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산시민 생활 및 복지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가족·친척으로부터 자녀 양육에 경제적 도움을 받는다’고 답변한 비율은 24.6%, ‘가족·친척으로부터 가사, 자녀 돌봄, 간병 등 일상생활의 도움을 받는다’는 답변은 33.7%를 차지했다.

정부가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는 ‘황혼육아’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육아정책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2018년 보육실태조사’(조사 대상 2533가구·3775명)에 따르면 조부모나 아이돌보미 등 개인으로부터 양육 지원 서비스를 받는 아동은 전체 아동 중 16.3%였다. 개인 양육 지원 제공자의 83.6%는 조부모였다.

또 ‘할빠’ ‘할마’의 절반가량은 돈을 받지 않는 ‘무급 봉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연 양육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불하는 비율은 38.5%, 부정기적으로 현금을 지불하는 비율은 9.5%, 현물을 지불하는 비율은 3.1%였다. ‘지불을 안 한다’는 응답도 48.9%에 달했다.

혈연 양육자에게 비용을 현금 또는 현물로 지불한다고 응답한 경우만 살펴본 결과, 금액은 월평균 70만3000원이었다. 보고서는 “혈연 양육자는 주로 자녀 양육에 있어 ‘무급 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제적인 보상 이외에도 노인의 시간을 보장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다양한 지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시가 2013년 전국 처음으로 실시한 ‘부산지역 맞벌이 가정의 조부모 손자녀 양육 실태 및 욕구 조사’를 보면 조부모 양육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조부모를 가장 바람직한 양육자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하정화 연구위원은 “혈연 중심적인 우리 문화 특성, 보육시설에 대한 안전과 신뢰 문제 등으로 조부모에 의한 비공식 보육서비스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수당 지급은 되레 황혼육아 조장

정부나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조부모에게 양육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는 곳은 사실상 없다. 부산시 관계자는 “정부의 아이돌보미사업에 장·노년층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해 경제활동을 돕는 제도 정도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여성가족부와 지자체는 민간 위탁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가정에 아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부 금액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잇따르는 아동 학대 사건 등으로 상당수 가정이 낯선 돌보미에게 아이를 맡기는 데 불안을 느끼거나, 친인척 양육을 선호해 조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조부모 양육 수당 등 황혼육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되레 황혼육아 문화를 조장하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관계자는 “부모에게 양육수당을 지급하고 있는데, 조부모에게 이를 또 지급하는 건 중복 지원이며, 혈연관계 특성상 부정수급이나 재정 누수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황윤정 기자 hwangyj@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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