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베이터 타고 411m 높이로
- 뙤약볕서 ‘벽체배근’ 작업 고역
-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서 일해”
- 노동자는 자부심·자조 엇갈려
- 1시간 새 피부온도 1.2도 올라
- 외국인연수생 더위에 현장 이탈
공사용 철제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공중에 멈출 때마다 온몸에 털이 쭈뼛 섰다. 목적지인 101층 도착에 걸린 시간만 20분. 부산 해운대 백사장 인파가 까만 점으로 보일 만큼 발아래는 까마득하고 아찔했다. 꼭대기 층의 뜨거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철근과 시멘트 등 공사 자재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정수리로 태양이 그대로 내리꽂히는 것처럼 볕은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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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김화영 기자가 지난 27일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101층 공사현장에서 철근을 세우는 벽체배근 작업을 체험하고 있다. 폭염에 달아오른 철근 온도는 60도에 달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황령산(해발 427m)과 비슷한 해발 411m 건물인 엘시티 신축공사현장. 이곳 사람들은 “폭염 속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다”며 자부심과 자조가 섞인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국제신문은 최고기온이 33.4도까지 오른 지난 27일 부산 엘시티 101층 공사현장 노동자들과 섞여 일하며 그들의 고충을 기록했다. 현장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이 이 건물 꼭대기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이날 맡은 작업은 ‘벽체배근’. 건물의 콘크리트 벽면을 만들기 위해 기초 뼈대인 철근을 세우는 일이다. 세로 2m의 철근을 일정 간격마다 세우고, 4m가 넘는 긴 철근을 가로로 잇는 작업이다. 두 철근이 십자(+)로 엇갈리는 부위를 철사로 묶어 고정한다. 일을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얼굴은 땀 범벅이 됐다. 옆에서 일을 돕던 작업반장은 “철근이 오전부터 내리 쬔 태양열을 머금고 있어 철근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난다”고 설명한다.
철근을 나르는 것도 고역이다. 몇 번이고 잡았다 놨다를 반복해야 겨우 두 손으로 든다. 장갑을 꼈지만 달궈진 철근은 들기 어렵다. 적외선 온도측정기로 열을 재니, 철근 온도가 무려 60도다. 계란이 45도부터 익고, 채소는 50도부터 데쳐진다고 생각하니 혀가 내둘러진다.
연신 장갑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는 기자에게 한 노동자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콘크리트 타설 후 굳히는 ‘양생작업’을 할 때는 더 힘듭니다. 시멘트가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했다가 내뿜기 때문에 열기에 얼굴이 익을 정도입니다.”
101층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50여 명이 뙤약볕 아래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태양을 피하고자 머리에 모자를 쓰고, 얼굴은 버프(손수건)로 감싸고, 다시 모자 위에 수건을 걸치는 등 온몸을 꽁꽁 감싸고 일했다. 볕은 피하겠지만 몸이 받은 열은 잘 빠져나갈까 걱정된다.
기자가 작업 전 팔 부위의 피부온도를 잴 때는 35.1도였는데 1시간 일한 뒤에는 36.3도로 올라 있었다. 적외선 온도계가 신기했던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팔을 내민다. 땀이 줄줄 흐르는 팔의 열을 재자 대다수가 37도를 넘었고, 최고 37.6도를 기록한 이도 있었다. 작업반장은 “2년 경력의 스리랑카 출신인 젊은 직업연수생이 오늘 더위를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좀 전에 일하기를 포기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현장 노동자폭염대책(열사병 예방 기본수칙 등)은 이곳 현장에서도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웠다. 부산은 이날 오후 폭염경보(이틀 낮 최고기온 35도 이상 유지)가 발효됐는데, 이때 정부 권고대로라면 오후 2~5시 작업이 중단돼야 한다. 그러나 101층 노동자는 중복인 이날 오후 일을 이어갔다. 포스코 건설 관계자는 “45분 일하고 15분은 쉬게 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 햇볕을 피해 쉴 공간과 얼음물, 시원한 선풍기 바람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 속 벽체배근 작업자 외에 걱정되는 이들은 또 있다. 건물 외벽공사를 하는 작업자들은 건물 코어(엘리베이터 있는 건물 핵심부) 외장을 마감하기 위해 외벽에 달린 거푸집 위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지난 3월 이곳 현장 SWC(Safety Working Cage) 작업 중 추락해 숨진 4명의 노동자가 생각 나 더욱 이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엘시티는 그간 부산에서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금품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이 옷을 벗고, 특혜 허가로 수려한 해운대의 스카이라인을 망친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러나 폭염과 극한의 추위에서도 이곳에서 일해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고공 노동자들의 고충은 늘 간과됐다. 포스코건설 엘시티사업단 권용안 현장소장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곳 2000여 명의 기술노동자는 국내 최고 높이의 주거건축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엘시티는 1조4904억 원을 들여 101층 랜드마크 타워와 85층짜리 건물 2동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2015년 10월 첫 공사가 이뤄진 뒤 현재 공정률은 53%. 내년 연말이면 공사를 마무리하고 입주민과 관광객을 맞는다.
김화영 기자 hongd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