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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46> 사천 신수도 고구마길

오솔길 지나면 펼쳐지는 바닷가 고구마밭… 복잡한 생각 묻으세요

  • 국제신문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18-04-22 19:10:50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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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도 6곳 중 가장 큰 신수도
- 삼천포항서 배타고 10분 후 도착
- 숲·바다, 밭·어장 동시 조망 가능
- 인근 몽돌해변은 피서하기 좋아
- 그물 같은 농로 걷는 재미도 쏠쏠

우리가 둘레길을 찾아 천천히 걷는 느림 속에 빠져보는 것은 내일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경남 사천시 동서동 신수도는 누가 뭐래도 이 같은 느림의 깊은 맛을 만끽하는 데는 그만이다.

신수도를 찾을 때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급한 성미’ 하나만은 붙들어 매 놓고 와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는 물론 트레킹을 즐겨하는 마니아들의 걸음이 잦은 ‘신수도 고구마길’은 비록 네 시간가량의 반나절 코스지만 ‘바쁜 나’를 내려놓고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기에는 충분하다.
   
멀리 바다 너머 삼천포화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신수도 고구마길을 걷는 여유로운 일행을 만났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지친 마음과 육신을 재충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무작정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섬 전체가 한려해상국립공원

사천시 동서동 삼천포수협 주차장 오른쪽 끝에 있는 신수도행 뱃머리는 두 개의 컨테이너가 매표소와 대합실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정작 표는 도선에 타고 있으면 관계자가 승선일지를 갖고 다니며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적고 돈을 받는다. 뱃삯은 편도 2000원이다.

항구를 떠난 배는 바다를 가르며 시원하게 내달리나 싶을 때쯤 뱃고동 소리를 내며 신수도항에 닿는다. 불과 10분 만이다. 갑판에서 뒤로 돌아보면 항구도시의 여유로운 모습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운데서도 대상을 차지한 창선삼천포대교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신수도항 선착장에 내리면 정면에 신수도복합문화터미널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오른쪽 뒤로 동서동사무소 신수 출장소와 학교, 보건지소 등이 가까이 있다. 본동마을 집들은 보건지소 뒤쪽의 언덕에 100여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푸르고 붉은 지붕을 멀리서 보면 성냥갑을 부채꼴 모양으로 쌓아 놓은 듯 아름답다. 신수도는 사천의 6개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이다. 섬 전체가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이어서 개발의 흔적이라고는 해안도로 이외에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조선시대 세종 때 심수도(深水島)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됐던 이곳은 한때 3000여 명이 살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사무소가 있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120가구에 300명이 조금 넘는 주민이 밭농사와 어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해를 바라보며 시작되는 길

   
복합문화터미널에서 여장을 고치고 걷기 시작해 오른쪽으로 마을 앞을 지나 간척지를 통과하면 콘크리트 옹벽과 함께 해안 길이 시작된다. 길의 오른쪽으로는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왼쪽의 산자락에는 마을주민이 십수 년 전부터 쌓았다는 수백 개의 돌탑이 반긴다. 점점이 바다에 떠 있는 어선은 반짝이는 파도와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서 몽돌해변이 있는 대구마을까지는 1.3㎞ 남짓하다. 꼬불꼬불 돌고 돌아가는 해안도로는 돌탑이 많다 해서 이름도 돌탑거리다. 대구마을에는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50여 가구가 살았으나 2003년의 태풍 매미 때 ‘전쟁보다 더한 피해’를 입은 주민 대부분은 집을 내팽개치고 재난이 없는 육지로 이주했다. 사천시가 대구마을 앞 2000여 ㎡에 조성한 오토캠핑장이나 마을 방파제 너머에 있는 몽돌해변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 작은 크기의 조약돌에서부터 호박만 한 몽돌이 500여 m 해안에 가득 하다. 요즘 부쩍 모래가 밀려와 해수욕장화 된다는 이곳은 오붓한 여름 피서지로 ‘딱’이다.

■고구마밭 사이로 난 고구마길

   
고구마를 심기 위해 거름을 뿌리고 흙을 뒤집는 등 밭을 관리하고 있는 마을주민들.
다시 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왔던 길 반대쪽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하늘을 향한 소나무와 참나무, 오리목 등으로 된 오솔길은 마음을 고요하게 해 준다.

짙푸른 파도 건너편은 고성군 하이면이다. 삼천포화력발전소와 건설공사가 한창인 고성그린파워 발전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석탄 운반선도 볼 수 있다.

한적한 이 숲길은 시골의 여느 농로 같은 느낌이다. 숲과 바다, 밭과 정치망 어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멍하게 서서 주위를 돌아보기도 하다가 길옆 아무 곳이나 퍼지고 앉아 생각을 멈춰보는 즐거움도 좋다.

오솔길을 지나면 이번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민둥 밭이 나타난다. 신수도가 자랑하는 고구마밭이다. 가끔 마늘이나 시금치, 겨울초, 고사리 등이 심어진 밭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구마를 심기 위해 비워둬 지금은 빈 밭이다. 물이 귀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보니 고구마를 심게 됐단다.

고구마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섬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본래는 주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길이지만 이제는 힐링을 위해 섬을 찾는 도시인의 트레킹 코스로 활용토록 내놓은 셈이다. 고구마밭 사이로 난 길도 민둥 길이다. 길가에는 그 흔한 가로수나 유실수도 없어 여름에는 더운 길, 겨울에는 추운 길이다.

트럭 한 대가 지나다닐 정도의 신작로지만 밭 사이사이로 만들어진 작은 농로는 리어카도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다. 이 사잇길을 걷는 맛도 쏠쏠하다. 그물처럼 얽힌 고구마밭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듯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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