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소년법정 방청 이후
- 7년째 부모같이 돌보며 생활
- 가정의 부재 겪은 보호소년들
- ‘정신적 허기’ 식욕으로 달래

- 센터 1층 자활 커피숍 개점
- 사회경험 쌓을 수 있게 노력

정훈(18·가명) 군은 이곳에 온 지 석 달 만에 난생처음으로 체중이 불었다. 집밥도 아닌, 낯선 형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곳의 밥을 먹었는데도 말이다. 전화로 “엄마, 나 3㎏이나 살쪘어. 잘 지내고 있어”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하염없이 울었다. 정훈 군은 누나와 함께 지내다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일을 저질러 이곳으로 왔다. 한 번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는, 배부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정훈 군에게 이곳은 ‘가정’이었다.

이곳은 바로 부산지역에서 가장 먼저 청소년 회복센터를 운영한 부산 사상구 ‘어울림’이다.

부산 사상구 어울림 청소년회복센터에서 보호소년들이 신문의 주요 뉴스를 놓고 토론을 하고 있다. 송진영 기자

■“부모님은 안 오셨나요?”

2010년 창원지법의 소년법정. 재판장이었던 천종호 부장판사가 피고인석에 앉은 소년에게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냐”고 물었다. 고개를 떨군 소년은 “바빠서…”라고 말을 맺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법정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한숨이 가득했다. 이 장면은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경우(46) 목사 부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당시 부산에는 청소년 회복센터가 없었다. 부모도 외면한 자녀의 재판. 왜 그 소년은 울면서 고개를 떨궜는지. 이날 법정 내 ‘침묵의 무게’는 매우 남달랐다.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돌봐줄 수 있겠느냐”는 천 부장판사의 호소에 이 목사와 그의 부인인 김선화(44) 현 어울림 센터장은 2011년에 청소년 회복시설인 ‘어울림’을 부산진구에 설립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사상구 모라동 철길 옆 다세대주택으로 이사 왔다.

김 센터장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운명처럼 다가온 ‘그날’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한 우리 부부의 역할을 제대로 찾은 듯해 기뻤고, 현재도 기쁘다”며 “‘그날’ 느낀 가정의 존재와 부모의 역할은 7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고 잊히지 않는다”고 전했다.

■삼겹살 회식과 정신적 허기

어울림 청소년회복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경우 목사와 김선화 센터장.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 법원의 보호 처분 가운데 가장 낮은 1호 처분을 받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삼겹살 회식, 파티다. 장정 10명에게 삼겹살 30, 40인분은 기본이다. 어울림 운영자들에게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슴 아픈 날이다. “선생님(김 센터장) 외에는 끼니 걱정, 많이 먹었느냐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는 소년들에게 삼겹살 회식은 배고픔과 정신적 허기를 동시에 달래준다. 모든 청소년 회복센터가 그러하듯 어울림 센터도 살림살이가 문제. 한 달 살림에 들어가는 비용은 평균 650만 원. 법원의 교육비(1인당 월 50만 원)와 국선 보조인 수당(월평균 230만 원), 후원금(〃 50만 원)에 의지하다 보니 이러한 삼겹살 회식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현재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진 것도 없지만 삼겹살 회식을 주저할 수 없는 일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 아이들의 식욕은 일반 청소년의 식욕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며 “만일 가정의 식탁, 가족과의 외식 공간에서 삼겹살을 먹는다면 이렇게 허겁지겁 먹겠나. 그 나이 때 배고픔이야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부모와 가정의 관심과 사랑에 굶주린 ‘정신적 허기’를 식욕으로 달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삼겹살 먹는 법도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선생님, 오늘은 제가 구워 볼게요’라면서 삼겹살 한 점을 건넬 때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 해맑다”며 “결국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면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김 센터장의 소회였다.

■반지하 속 커피 300g 향기

지난주 문을 연 센터 1층 커피전문점 ‘커피 0.3’.

어울림 센터는 지난 19일 센터 1층(반지하 형태)에 ‘커피 0.3’이라는 자활 커피숍도 열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커피보다 원두를 더 넣어 10잔에 원두 300g을 사용해 판매한다는 뜻으로 가게명을 지었다. 어울림 센터 소년 가운데 한 명이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윤을 얻고자 커피숍을 연 것은 아니고 아이들에게 ‘한 달’이 갖는 의미를 몸소 익혀주고자 문을 열었다”고 운을 뗐다. “몇몇 아이가 아르바이트하다가 한 달도 안 돼 그만두는가 하면 근무 중에도 업주와 싸워 분쟁이 생겼는데, 이렇게 해선 센터에서 나간 뒤 아무일도 못 할 것 같아 걱정됐다”며 “어떻게든 센터에서 나간 뒤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비록 아르바이트지만 어떻게 일을 해야 하고, 일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센터 퇴소 이후 소년들의 생활까지 염두에 둔 계획이라는 뜻이다.

센터 운영에서부터 퇴소 이후 소년들의 삶까지 가정과 사회,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이 목사와 김 센터장이 대신하고 있다. “잔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을 둔 사람도 없었지만 선생님은 제가 밥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약도 챙겨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맙다는 마음보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소년들의 철든 한 마디가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후원 문의 사단법인 ‘부산 청소년 상담교육센터’ (051)635-1388.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