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아 4명 뽑는데 71명 우르르
- ‘낙방봉투’ 들고 우는 엄마도

- 교육부 온라인추첨 도입불구
- 경쟁률 공개 꺼리는 사립 탓
- 부산 참여비율 3.6% 불과

지난달 30일 오후 7시 부산 A유치원. 이날은 내년도 입학생을 추첨하는 날이다. 본지 기자 역시 내년 만 3세(한국나이 5세)가 되는 둘째를 입학시키려고 입학설명회에 이어 이날 추첨에도 참가했다.

	부산지역 한 유치원에서 신입생 선발을 위한 추첨이 벌어지고 있다. 김해정 기자

“84명이 원서 접수하셨고 오늘 추첨엔 최종 71명이 오셨습니다.”

여자아이 4명만 뽑는데 71명이 지원했으니 18대 1이다. 여기저기서 “추첨 순서가 뒷번호면 아예 뽑을 기회도 없겠다”는 푸념이 터져나왔다.

먼저 추첨하는 순서부터 정했다. 기자가 뽑은 건 21번. “그래도 낫네요. 저는 50번 넘어갔어요. ” 뒤에 앉은 한 엄마가 피식 웃었다. 추첨에서 떨어지면 이 번호가 대기번호가 된다고 한다. 정원이 30명 정도일텐데 대기번호 21번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본 추첨이 시작됐다. 원장이 4장의 합격 종이를 봉투에 넣고 섞었다. 공정을 기한다고 학부모 몇 명이 나와 또 한 번 봉투를 섞었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왔다.

“아쉽고 서운하네요.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유치원 입학 추첨에서 떨어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를 입학시키려고 2년에 걸쳐 온 동네 유치원을 돌아다녔다. 낙방의 쓴맛도 여러 번 봤다. 그때는 밤새워 줄을 선 적도 있었다.

추첨이 끝나자 곳곳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오늘 다른 유치원도 떨어졌어요. 이제 주말에 추첨하는 한 군데 밖에 안 남았는데, 거기도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기자와 같이 ‘낙방 봉투’를 집어 든 엄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유치원이 내년도 입학생을 뽑는 11월이 되면 유치원생(만3~5세)을 둔 부모는 결전을 준비한다. 유치원 입학설명회와 추첨이 줄줄이 이어진다. 유치원마다 입학설명회와 추첨 등 최소 두 번씩은 가야 하고, 오후 6시 이전에 설명회나 추첨 일정이 잡히면 맞벌이 부부는 휴가를 내야 한다. 추첨일자가 겹치면 아이의 조부모까지 동원한다. B유치원에서 만난 김모(여·41) 씨는 “회사에 반차 내고 추첨하러 왔는데 떨어져 회사에 눈치가 보인다”며 “주변에 보니 시부모가 대신 오는 경우도 있는데 부럽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 같은 상황을 막고자 올해 온라인 유치원 추첨시스템인 ‘처음학교로’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올해 부산지역 사립유치원 참가비율은 3.6%. 유치원 경쟁률이 공개될까 봐 참여를 꺼린다고 한다. 참여 여부는 자율이므로 현재로서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

“온라인으로 추첨하면 이 추운 날 애까지 맡기며 올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너무 화가 나네요. 유치원이 잇속을 챙기기보다 부모 마음도 헤아렸으면 좋겠어요.” 이날 추첨에서 떨어진 한 엄마는 이 말을 남기고 쓸쓸히 돌아갔다.

하송이 김해정 기자 songy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