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16살
- 눈 떠보니 히로시마 인근 탄광
- 두드려 맞고 고구마로 버텨
- 붕괴사고로 다쳐 후유증까지”

- “임금은 저축 명목으로 뺏기고
- 지금껏 어떤 보상도 못 받아”

1941년 어느 날 일본 순사가 부산 기장군 연화리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마을이장과 함께였다. 16살이던 이성옥은 영문도 모른 채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끌려갔다. 동네친구 6명과 함께. 며칠이나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히로시마 인근 오카야마현 코카와 탄광이었다. 그곳에서 소년 이성옥은 작업 받침대 설치부터 다이너마이트 운반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탄광이 무너지면서 다리가 깔리는 사고도 당했다. 광복 72년을 하루 앞둔 14일 연화리에서 만난 이성옥(91) 할아버지는 아직도 다리가 불편했다.

	16살이던 1941년 일본으로 끌려가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해방과 함께 고향인 부산 기장군 연화리로 돌아온 이성옥(91) 할아버지가 14일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당시 이장의 배에서 일하던 인부 대신 내가 끌려간 걸 뒤늦게 알았지. 분노가 치밀었어. 7남매 가족과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던지.” 아들이 끌려가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냉수를 떠놓고 빌었다. “용왕님, 해님, 달님 제발 우리 아들 몸 성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해방을 앞둔 어느 날. 미군 폭격기가 히로시마를 폭격했다. 사흘간 포연이 가시질 않았다. 빽빽한 함바집(공사 현장 식당) 안에서 강제징용된 조선인 인부들은 두려움에 등을 맞댄 채 흐느꼈다.

당시 조선사람들은 잔혹하게 맞았다. 일본인이 밥을 먹을 때, 조선인은 고구마를 받았다. 산중에 버려진 떫은 감을 주워 씹으며 하루를 버텼다. 지금도 이성옥 할아버지는 그때만 생각하면 억울함과 서러움에 베갯잇을 적신다.

3년6개월의 지옥 같던 강제징용은 일제의 항복선언으로 끝났다. 아들의 귀향 소식에 어머니는 춤을 췄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몇 년이나 지났을까. 6·25전쟁이 발발했다. 청년 이성옥은 전장으로 향했다. 동생 준옥·선옥과 함께였다. 서울 노량진에서 쌀 배급 임무를 맡았다. 길을 지나던 피란민에게 남몰래 쌀을 조금씩 나눠주기도 했다. 긴 전쟁이 끝나고 귀향한 그는 여태껏 어부의 삶을 보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심의 결정통지서와 위로금 지급 결정서를 들어 보이고 있는 이성옥 할아버지. 서순용 선임기자

이 할아버지는 지금껏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강제징용 보상도 받은 적도 없다. 탄광에서 받은 임금은 모두 일본우체국에 예금했는데 돌려받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이 한일청구권협정 대가로 받은 자금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한국유족회가 이날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일청구권자금을 돌려 달라는 대규모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이유다. 그나마 이 할아버지는 2007년 정부로부터 강제징용 피해자로 인정받아 2009년부터 의료지원금 명목으로 1년에 80만 원을 받고 있다.

“아직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어. 나라가 강하고 나라다워야 나 같은 희생자가 더는 안 나와.” 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다.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