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속 사내는 우주피스를 찾으려 빌뉴스를 헤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빌니아 강 건너 그 곳, 전쟁의 상흔이 남은 폐허의 거리가 예술가의 둥지가 됐다

- 모든 억압·관습 버리고 개인 권리를 무한 보장
- 헌법에서 부과한 단 하나의 의무는 ‘고양이는 도와야 한다’

올해 5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에서 만난 라트비아대학 서 교수는 여름 배낭여행을 발트 삼국으로 정했다는 나의 말을 듣자마자 우주피스 공화국(The Republic of Uzupis)을 소개했다.

인터넷에서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검색하다가 만난 동명의 하일지 장편소설을 구입하고 여정을 시작했다.

우주피스공화국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

“그렇다면 나 말고도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요?”

“있었지. 몇 년 전에. 그 사람도 당신처럼 생긴 동양인이었을 거야.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어쩌면 당신처럼 훈에서 왔을지도 모르겠군.”

“그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

“죽었지.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간다고 며칠 동안 빌뉴스를 헤매다가 결국에는 권총 자살을 했지”

- 하일지의 소설 ‘우주피스 공화국’


‘빌뉴스를 헤매다가 결국 권총 자살을’ 할 정도로 찾고 싶고, 그만큼 찾기 어려운 우주피스 공화국이 있다는 것인가? 있다면 도대체 어떤 공화국일까?

■강 건너 우주피스공화국이 있다

우주피스공화국을 알리는 길거리 표지판.

리투아니아(Lithuania) 수도 빌뉴스(Vilnius)의 구시가지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공화국의 위치를 물어보자 주인은 자살이 소설 속에서만 허구로서만 가능하다는 무언의 표정으로 지도 한 장을 선뜻 건넨다. 지도에는 우주피스가 구시가지를 감싸고 가로지르듯 흐르는 빌니아 강(Vilnia River) 건너편에 표시되어 있다.

게디미나스 성(Gediminas Castle, 1323년 건축)을 끼고 흐르는 빌니아 강변 산책로를 따라서 베르나르딘 공원(Bernardine Park) 쪽으로 가면서 왜 공화국을 찾아가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공원을 지나 러시아 정교회 프레치스텐스카야(Prechistenskaya) 성당 옆 공화국의 간판을 보고 다리를 건너 드디어 도착한 공화국.

공화국을 알리는 간판을 보고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만난 것은 철골구조물 사이에 이름을 써서 끼어 놓은 그다지 많지도 않은 녹슨 자물쇠들뿐이다. 그 철골구조물에 끼워놓을 수 있을 자물쇠의 숫자만큼, ‘빌뉴스를 헤매다가 결국에는’ 끼워진 수만큼밖에 공화국을 오지 못한다는 것을 다리는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곳

‘공화국 헌법’을 23개 언어로 번역해 벽에 붙여 놓았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입국자를 기다리는 것은 레스토랑과 그 입구에 음식 메뉴판과 같이 있는 공화국에 관한 팸플릿이다. 팸플릿은 리투아니아 공화국과 그 속의 공화국에 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공화국의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걸어온 길,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 베르나르딘 공원까지 거슬러 가면, 역사의 시간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되돌아간다.

당시 강의 건너편은 빌뉴스를 문화생활의 중심지로 살았던 유대인의 베르나르딘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Holocaust, 1933~1945년 사이의 대학살)와 소련의 강제 점령과 변방 편입으로 인하여 폐허가 된 우주피스 지역이다. 도시 외곽의 폐허는 비바람도 가리기 어려운 낡은 주택과 빈집들로 가득하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관습을 거부하면서 방랑하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에게는 오히려 보금자리가 된다.

■헌법 “고양이는 도와줘야 한다”

1990년 3월 리투아니아는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리가(Latvia Riga)를 거쳐 에스토니아 탈린(Estonia Tallinn)에 이르기까지 발트 삼국의 시민 200여만 명이 거리에서 손을 잡고 600㎞ 행렬을 이룬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으로 독립한다.

독립 이후에도 계속 예술가들이 찾아오자, 시인 겸 영화감독 릴레이키스(Romas Lileikis)와 체파이스티스(Thomas Chepaitis)가 주도하여 예술가들만의 세계를 만들고자 공화국을 선포한다. 공화국은 모든 억압과 관습에서 벗어나 예술의 세계를 창조하는 무한 자유지역, 예술가들의 이상향이다.

예술가들은 국기와 헌법, 국가와 군대, 대통령과 내각의 구성 등과 함께 1997년 4월 1일 공화국을 선포하고 4월 1일을 국경일로 정한다. 공화국은 ‘다시 싸우지 않는다’ ‘이기지 않는다’ ‘항복하지 않는다’를 모토로 하여 타인과 반려동물 개, 고양이의 권리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의 권리를 무한히 보장한다. 오직 헌법에서 부가한 하나의 의무는 ‘고양이는 그의 주인을 반드시 사랑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는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제13조)’는 것뿐이다.

■창조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상향을 꿈꾼다. 무한 자유를 꿈꾸는 권리는 예술가의 특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57년 11월 ‘현실 일체의 구속에서/날아나며 날아나며 자유하고자 하는/시인’들의 나라(박두진의 ‘시인공화국’ 중에서, ‘현대문학’ 35호)를 세우고자 했지만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소설 속의 한 동양인이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간다고 며칠 동안 빌뉴스를 헤매다가 결국에는 권총 자살을 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