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1학년 때 고리1호기 건설
- 주민 인근마을로 뿔뿔이 흩어져
- 해수욕장 사라지고 상가촌 형성
- "가동 멈추면 안전하게 해체해야
- 방사성폐기물 저장 절대 안 돼"

"고리1호기 바로 밑이 예전에 우리 집 이었습니더. 어느 날 마당에서 어른들이 뭐 하드만 며칠 뒤에 없어지대예."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이창호 이장이 15일 영구정지를 앞둔 고리1호기를 가리키고 있다. 이창호 이장은 고리1호기 건설로 어린 시절 고리에서 길천리로 이주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이창호(55) 이장은 오는 18일 영구정지되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산증인이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1호기 건설부터 폐로까지 모든 역사를 목격했고, 함께했다.

고리1호기 건설은 그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시작됐다. 돌이 많은 마당, 2칸짜리 초가집이었던 것만 기억에 남았다. 서슬 퍼런 군부정권 시절이었다. 갓을 쓴 마을 어른들이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항의했으나 곧 공사 소리에 묻혔다. 몇 년 뒤 유년 시절 집터에 거대한 원전이 자리 잡았다.

그의 고향은 조각났다. 이 이장의 가족은 고향인 고리마을에서 길천마을로 강제로 이주되다시피 했다. 마을 사람 일부는 울산시 서생면 골매 마을이나 일광면 동백 온정마을로 옮겨갔다.

"원자력, 우라늄. 이런 말이 들리니까 좀 무섭대예. 지금은 괜찮습니더. 근데 사실 원전 아니면 우리 마을은 좀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껍니더."

고리1호기는 40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길천마을의 자랑이던 해수욕장은 매립됐다. 1000명이 넘던 토박이들, 마을 어항의 고깃배도 사라져갔다. 대신 고리원전 직원을 상대로 한 상가촌이 형성됐다. 어릴 적 친구들은 1, 2명을 빼고 고향을 떠났다. 그 자리를 외부인들이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어졌고, 산업 발전에 큰 역할도 했다 아입니꺼. 이제는 안전하게 해체해야 됩니더. 앞으로 다른 원전도 줄줄이 영구정지될낀데."

고리1호기 폐로 소식에 그는 후련하기도 하고 걱정도 앞선다고 했다. 그는 고리1호 영구정지에 맞춰 마을주민들의 생계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한 이주대책이 여전히 마련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개별적인 이주는 마을을 분열시킨다. 마을 전체가 이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했다.

고리1호기에 남게 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핵연료봉(사용후핵연료)은 길천마을이 안게 된 새로운 고민이다. 우리나라에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없어 고리1호기에서 사용한 폐핵연료봉은 고리본부에 저장된다. 사용후핵연료 임시 건식저장시설(본지 지난 13일 자 1면 보도) 역시 고리에 건설될 예정이다. "마을 대책위원회를 꾸려서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힐낍니다. 고리1호기가 사라진 곳에 더 위험한 방사성폐기물이 남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꺼?"

박태현 장안발전위원회 위원장도 "고리1호기를 정지하는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리 시설도 없이 정지시키는 것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