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로마(Rome)와 롬(Rom), 로마인(Roman)과 로마족(Roma)을 구별하세요? 물론 로마는 이탈리아 수도이며, 로마인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죠? 롬은 어디이고 로마족은 어디에 살죠? 롬과 로마족은 유럽에서 집시(단수)와 집시족(복수)을 부르는 말이다. 집시의 언어, 곧 로마족의 언어를 로마어라고 한다.

	클루지나포카 중앙공원에서 열린 책 읽기 행사에서 엄마와 아이가 책을 읽고 있다.

'로마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토지'로 뜻풀이되는 루마니아 여행이라면, 집시 남성 롬(Rom)과 집시 여성 롬니(Romny)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롬은 도둑질과 사기, 유괴와 납치 등 편견으로 덧씌워진 이미지 속에 머무를 뿐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퇴폐미와 격정으로 상대를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 '카르멘'의 이미지를 이미 뒤집어쓴 롬니도 동명의 소설(프랑스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1845년 작품)과 오페라(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 Georges Bizet의 1875년 작품) 속에서 현실로 나오지는 않는다.

■'집시' 대신 '문화의 힘'을 만나다

	'나눔(share)'을 표현한 '유럽 청년수도 클루지나포카' 홈페이지의 이미지.

자기와의 사랑을 끝까지 거부한 카르멘을 죽인 돈 호세 같은 촌뜨기 여행자는 집시 여인을 기다리면서 사랑을 꿈꿀지도 모른다. 그 촌뜨기는 '그댄 외롭고 쓸쓸한 여인/(…)/먼 길을 떠나가네./때론 고독에 묻혀있다네./하염없는 눈물 흘리네./밤에는 별 보며/낮에는 꽃 보며//사랑을 생각하네./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난 밤마다 꿈을 꾸네./오늘 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집시, 집시, 집시/집시 여인'(이치현과 벗님들의 '집시 여인' 중에서)이라는 노래를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순간을 알아채고는 주위를 살펴본다.

'2015년 유럽 청년수도 클루지나포카'라는 현수막이 중앙공원 입구에 걸려 있다. 유럽 청년수도는 비정부기구 유럽청년포럼이 주최하여 해마다 여는 것으로 2014년 처음으로 유럽연합(EU) 의회에서 공식 행사로 인정받는다. 유럽청년포럼은 모든 유럽 청년이 평등한 세계 시민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1996년 국제기구로 조직되어 현재 40개 국가청년회의, 59개 세계 청년비정부기구, 99개 지부를 가진 단체이다.

유럽 청년수도 행사 개최를 신청한 적도 없는 루마니아의 클루지나포카에서 유럽 청년수도 행사가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열리다니.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다니! 2015년 당시 클루지나포카를 여행하고 있던 나는 여행 일정을 탓하고, 현수막을 뒤돌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도 발길을 이미 중앙공원으로 깊게 옮기고 있었다.

■유럽청년수도 행사 열리는 도시

	2015년 유럽 청년수도 행사 때 클루지나포카 중앙공원에서 펼쳐진 음악회.

중앙공원은 1827년 여성복지회에서 오락 장소로 개발한 이래 1838년 도시공원위원회 발족, 1874년 헝가리국립극장 설립 등을 계기로 휴식 공간과 문화 공간을 겸하여 오늘에 이른다. 그 공식 명칭은 독립의지와 민족의식을 깨우쳐 준 지도자의 이름을 붙여서 '센트럴 파크 시미온 바누티율'(1808년 7월 21일~1864년 5월 28일)로 1989년부터 명명된다.

공원에 들어서니 시민들도 채 한 달도 남지 않는 유럽청년수도의 개최를 가슴으로 벌써 받아들이고 있었다. 입구 노점상의 늙은 주인은 '당신이 사랑을 원할 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키스를 나눌 것'이라는 영문을 붉고 푸른 색칠로 그려 놓은 티셔츠를 입고는 자랑하듯 가슴을 확 펼치고 서 있다.

입구의 가게를 지날 무렵 소메슈 강과 미크 강 유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현수막, 벽보, 포스터들이 나부끼는 소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2015년 유럽청년수도' 포스터를 시작으로 '클루지나포카, 젊음, 비전, 힘, 책임감, 즐거움' 등 영문 글자를 사각형 상자에 하나하나 새겨 포개어 놓은 것에 이어서, '젊음은 여기서 시작한다 - 재미와 젊음의 지역에 가입하라' '공원에서 재즈를' 그리고 극장, 공연장, 영화관 등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의 플래카드가 즐거이 서 있다.

■시민이 주인 되어 공원에 활력을

	중앙공원에서 쉬고 있는 시민들.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가득 찬 숲길을 지나가면 악기를 연주하는 조각들로 이루어진 분수대가 중심에 있다. 높이 솟아올라 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분수대의 물길처럼 시민들은 여기저기에서 노래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면서 한낮의 햇살만큼 강렬하게 저마다 예술 활동을 즐긴다.

그러다가 축제의 흥이 사라지면 시민들은 공원을 산책하면서 지휘자 안토닌 시올란 (Antonin Ciolan, 1883년 1월 1일~1970년 4월 12일), 시인 조지 코즈벅(George Cosbuc 1866년 8월 20일~1919년 5월 9일)을 비롯하여 위대한 예술가들을 흉상으로 만나기도 한다.

시민과 예술가의 만남은 공원을 나서도 계속되고, 박물관과 열대식물원으로 이어진다. 클루지 헝가리 극장, 클루지 헝가리 오페라, 클루지나포카 국립극장, 트란실바니아 역사박물관, 환경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이 시민을 맞이한다.

시민들은 공원에서 관람객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한다. 그 주위에는 문화예술 공간과 기관들이 시민의 예술 활동을 북돋운다. 부산에서 공간이,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 공간과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는 없을까? 공원 주위에 복합문화공간이나 기관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을 것이다.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