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고 가파른 골목 오르내리니
- 연탄 6장 실은 지게 천근만근
- 주민이 준 어묵·커피로 몸 녹여

- 개금동·문현동 5000여 장 전달
- 후원 절반 줄고 가격 올라 걱정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부산에는 아직 2500여 가구가 연탄으로 추위를 견딘다. 부산연탄은행은 매년 40만 장 이상의 연탄을 이웃들에게 배달한다. 김봉기 기자가 지난 14일 부산진구 개금동 기찻길 옆 마을과 남구 문현동 안동네에서 진행된 연탄 나눔 현장을 취재했다.

	본지 김봉기 기자가 14일 부산진구 개금동 부산연탄은행의 연탄 나눔 현장을 찾아 직접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추운데 오뎅 하나 묵고 하이소."

오전 10시 개금동 기찻길 옆 마을. 연탄 지게를 지고 고갯길을 오르던 기자에게 조동숙(71) 할머니가 어묵탕을 내민다. 영하의 날씨에 움츠린 근육이 어묵 국물에 스르르 녹는다.

"우리 동네도 재개발이니 뭐니 말이 많다. 그래도 나 죽을 때까지 여기서 연탄 때며 살아야제." 조 씨의 말에 이봉자(여·65) 씨도 거든다. "추운 날 따숩게 지내라고 연탄 날라주는데 오뎅탕밖에 못 줘 미안타. 오늘 200장 들어왔으니 당분간 연탄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다시 지게를 멨다. 3.5㎏짜리 연탄 6장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30분도 안 돼 호흡이 거칠어졌다. 허둥대다 연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식은땀에 비지땀까지 뒤섞여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허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져 자꾸 땅으로 꺼지는 듯했다.

베테랑 자원봉사자 박진현(63) 씨가 기자를 보고 혀를 끌끌 찬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는 힘들다는 기색이 없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쪼매라도 아낄라고 연탄 땐다 아이가. 고마워하는 얼굴 보면 괜히 찡해. 오늘은 어묵에 커피까지 대접받으니 더 힘이 나네."

	김 기자가 21㎏상당의 연탄 6장을 지고 남구 문현동 골목길을 걷고 있다. 전민철 기자

그래도 골목길은 고역이었다. 좁은 곳은 너비가 1m도 안 돼 리어카는 물론 지게 통과도 힘들어 '곡예운전'을 해야 했다. 지게에 연탄을 싣고 내려주는 자원봉사자들도 힘들긴 매한가지. 지게꾼과 달리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상·하차 담당은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는다. 장갑 사이로 검댕이 스며들어 손이 까맣게 물들기 일쑤다.

부산연탄은행은 이날 오후까지 개금동과 문현동에 5000여 장의 연탄을 배달했다. 한 집에 연탄 100~200장씩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양이다. 강정칠 부산연탄은행 대표는 "노인이 많은 동네라 직접 연탄을 사기 힘들다. 골목이 복잡하고 길이 가파른 곳도 많다"고 말했다.

연탄보일러를 쓰는 이유는 난방비를 줄일 수 있어서이다. 문현 안동네에 사는 문임순(여·75) 씨는 "딸이랑 사는데 가파른 언덕 오르내리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여기가 좋다"며 "겨울에 하루 4~5장 쓴다.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도 있지만 값싼 연료로는 연탄이 최고"라고 했다.

배달이 고돼도 연탄이 넉넉하다면 좋을 텐데 요즘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조선·해운업 불황과 김영란법 시행이 맞물려 후원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연탄 43만 장을 기부했던 부산연탄은행은 현재까지 25만 장분을 기부받았다. 목표 50만 장의 절반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탄값도 20%가량 오른 장당 700원대이다. 연탄값이 오르면 기부금으로 살 수 있는 연탄도 줄어든다.

기자와 함께 연탄을 나른 성지고 1학년 이혁준(16) 군은 "아직도 연탄보일러라니. 오늘 부산의 낯선 모습을 봤다"면서 "매년 배달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