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먹기 적적" "또래와 수다"
- 천사무료급식소 주 3회 배식
- 매일 낮 11시부터 세 차례 실시
- 좌석 104개에 300여 명 몰려
- 7시 오는 노인·번호표는 기본
- 부산 홀몸노인 11만4000여 명
- 급식소 떠날때 발걸음 무거워
"아가씨, 나 봉지 하나만 줄 수 있어?"
 |
| 국제신문 김영경 기자가 지난 2일 부산 부산진구의 한 무료급식소를 찾은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효 기자 |
지난 2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앞 천사무료급식소. 자원봉사 조끼를 입은 기자에게 할머니 한 분이 슬며시 말을 걸었다. "남은 밥 좀 싸가려고. 비닐봉지 하나만 구해줘." 할머니는 꾹꾹 눌러 담은 밥을 가방 속에 넣었다.
천사무료급식소는 월·수·토요일 주 3회 홀몸노인에게 점심을 제공한다. 준비된 의자는 104개인데 하루 300여 명이 몰린다. 이날도 오전 11시부터 낮 12시30분 배식이 끝날 때까지 긴 줄이 생겼다.
오전 9시를 넘어서자 노인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10시쯤 되었을 땐 좌석이 가득 찼다. 줄을 선 노인들에게는 번호표가 적힌 식권이 배부됐다. 몇몇은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대공원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몇몇은 추위에도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렸다. 천사급식소 김해윤(55) 씨는 "오전 7시부터 음식을 준비하는데 그때 찾아오셔서 오전 11시까지 기다리는 분도 있다"고 전했다.
이곳을 찾는 노인들은 대부분 홀로 사는 1인 가구이다. 김모(여·90) 씨는 "보통 아침 겸 점심으로 무료급식소에서 식사하고 저녁은 과일이나 간식으로 때운다"며 "집에 혼자 있으면 먹을거리도 없고 음식하기도 귀찮다"고 말했다.
외로움 때문에 무료급식소를 찾기도 한다. 이모(여·75) 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종일 텔레비전 보거나 누워 있다"며 "이곳에선 비슷한 또래를 만나 수다도 떨고 사람 구경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
| 지난 2일 부산진구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노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전국자원봉사연맹 제공 |
오전 11시가 되자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선행, 선행, 선행!"이라는 구호와 함께 배식대에서부터 일렬로 길게 늘어서 음식이 담긴 식판을 노인들에게 전달했다. 기자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이날 메뉴는 설렁탕과 도토리묵 절편 김치. 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순식간에 음식을 비웠다. 식판을 나르는 내내 '얼마나 못 챙겨 드셨으면…'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할머니는 식사로 나온 설렁탕을 하나도 먹지 않고 싸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자원봉사자 박모(58) 씨는 "다른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고 오신 분들이 저녁때 드시려고 싸달라고 한다"고 귀띔했다. 이날 천사급식소는 노인들에게 생고기를 싸줬다. 급식이 끝나면 테이블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식판을 나르고 청소를 마치고 보니 시계는 어느새 오후 1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노인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부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2만5000명이다.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 비율이 15.5%로 7대 도시 중에서 가장 높다. 부산에서 혼자 생활하는 노인도 2014년 10만2000명에서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빈곤율은 48.1%로 OECD 국가 1위이다. 부산은 고령 연금 수급자의 절반이 월 25만 원 이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사 한 끼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긴 줄을 서는 2017년 무료급식소의 풍경.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급식소를 떠나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다.
김영경 기자 yk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