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이시(棗栗李柿)는 대추→밤→배→감의 순서로 제사상에 놓으라는 뜻이다. 쓸데없는 격식일 수 있으나 그 나름 뜻이 있다. 씨가 1개인 대추는 임금, 한 송이에 3개가 들어 있는 밤은 3정승, 6개인 배는 6판서, 8개인 감은 8도 관찰사란다. 일설이겠지만 멀쩡한 과일을 가지고 왕 아래 신하의 벼슬 위계를 세운 게 맘에 들지 않는다.

	세상만물의 근본을 뜻하는 세 톨의 율자

복숭아는 제사상에 올릴 수 없다. 사과마저도 제친 이 네 과일은 특별하다. 이들 중 밤은 더 그렇다. 첫째, 과일은 동물에게 먹히려고 될수록 탐스럽게 보이려 하는데 밤은 까칠한 가시에 둘러싸여 경계를 준다. 하지만 밤송이가 벌어져 도도한 가시 안에 자리 잡은 밤톨의 자태는 꽤 매혹적이다. 둘째, 제사상에 껍질을 까서 올리는 점도 특별하다. 까만 밤이 밝은 낮을 감싸듯 까만 밤껍질이 밝은 흰 속살을 감싸는 밤이라 조상신께는 까맣고 껌껌하고 어두운 것을 걷어내 올려야 한다. 셋째, 밤은 알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유일한 과일이다. 알밤은 더 탐스럽게 들린다.

또한 자(子)라는 접미어가 붙는 유일한 과일이다. 밤은 율(栗)인데 중국인들은 율자(栗子)라 한다. 가히 공자, 노자급으로 올라간 최상급 과일이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밤송이에는 세 톨의 밤이 들어 있다. 3은 각별하다. 삼위일체가 있지만 삼생만물(三生萬物)도 있다. 노자도덕경 구절이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는데 셋은 만물을 낳는다. 밤을 까먹으며 세상만물이 생기는 근본을 생각할 만하다.

박기철·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