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기사 카드 수천 도용 사장
- 관리인 접대받은 입주민대표도

A회사 운전기사는 자신이 모시는 '사장님'에게 5400만 원을 강탈당했다. 처음 신용카드를 빌려달라고 할 때만 해도 금방 갚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착각이었다. '사장님'은 수시로 운전기사의 신용카드를 빌렸다. 곤란하다는 표정만 지어도 "너 잘리고 싶어?"라는 폭언이 돌아왔다. 운전기사는 카드빚 때문에 가정불화는 물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만연한 '갑질'이 민낯을 드러냈다. 부산경찰청은 지난달 1일부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한 163명을 적발하고 9명을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범죄 유형별로는 콜센터에 전화해 욕설을 하거나 음식점·백화점·마트 종업원을 괴롭힌 블랙컨슈머가 113명(69.3%)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조직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인사·채용 비리도 17.8%(29명)에 달했다.

부산의 한 콜센터 직원들은 '그놈 목소리'만 들리면 온몸을 떤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전화를 해 괜한 트집에 욕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343차례 '악성 고객'에 시달린 콜센터 여직원 10명은 스트레스성 복통과 두통을 호소 중이다. 일부 직원은 아예 '그놈'을 피해 장기 휴가를 신청해 콜센터의 정상적인 업무가 어려워졌다.

부산의 한 아파트입주회의 회장은 관리업체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어느 날 '회장님'은 업체 직원을 방으로 불렀다. "재계약 날짜가 다 돼 가는데…." 업체 측은 그날 '회장님'에게 220만 원 상당의 식사와 술을 접대했다.

한 원청기업 사무직원은 하청사 영업사원에게 "재계약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속여 1억 원을 받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결국 전액을 갚고 쇠고랑을 차기도 했다. 부산시 산하 한 체육 실업팀 감독은 용품 재계약을 미끼로 납품받은 물품 일부를 되돌려주고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챙겼다가 적발됐다. 하청업체에 지급해야 할 공사대금 5억2000만 원으로 개인 빚을 갚고 정작 하청사에 한 푼도 주지 않은 채 공사 진행을 강요한 원청업체 직원이 붙잡히기도 했다.

최근 집값 급등의 주원인인 재개발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재개발조합장은 재개발 공사 선정 대가로 5500만 원의 뇌물을 받기도 했다. 이와 유사한 권력·토착형 부패·비리 사범도 8.6%(14명)에 달했다.

부산경찰청은 "갑질 횡포는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가 불이익을 우려해 입을 닫기 때문에 좀처럼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 오는 12월까지 특별단속을 통해 만연한 갑질을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장호정 기자 lighthou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