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자 '공무수행 사인'을 이유로 직함을 그만두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공공기관의 각종 위원회와 대학의 이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다. 앞으로 법 적용 대상이 될 것을 꺼려 위원회 참여를 주저할 것으로 보여 공공기관이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부산시의 경우 현재 168개 위원회에서 위원 3272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중 공무원이 대다수인 당연직 위원 674명을 제외하고 민간인인 위촉직 2598명이 공무수행 사인에 해당한다. 부산고법은 조정위원 56명 가운데 변호사 법무사 시민단체 경제인 등 41명이 해당하고 부산지법과 부산지법 동부지원의 집행관 각각 16명과 7명, 부산법원(고등지방지원) 산하 감정인 200여 명 역시 공무수행 사인이다.

시 기업유치위원회에 참여하는 A은행 부행장은 이날 위원직을 사임했다. 시 관계자는 "유치 기업의 재무상황에 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전문가를 영입했는데 공무수행 사인으로 인해 본업에 제약을 받는다는 이유로 사임했다"고 말했다. 건축위원회 등 건축사와 기술사 등 전문가 그룹이 많은 위원회는 아직 이탈 행렬은 없지만, 앞으로 법 적용에 따라 활동을 제약받을 수 있어 시는 전문가 인력풀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부산지역 대학 법인의 이사들도 줄줄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영산대의 경우 기업인 이사 2명이 최근 법인에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동아대 법인 이사를 맡은 지역 B중견기업 회장도 모교 이사직을 그만둬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법 적용 대상이 되면 행동 하나하나에 법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하는 등 기업 활동에 지장을 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기업인은 "위원회 해당 활동에 대해서만 법 적용이 된다지만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법이 규제하는 부분과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 같은 위험까지 안고 위원회 활동을 할 이유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대학 법인의 한 관계자는 "이사를 뽑을 때 동문 기업인에게 주로 부탁을 하는데 김영란법 탓에 기피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기업인 임원을 모시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수행 사인(私人)

각종 공공기관의 위원회에 참여하거나 공공기관의 업무를 위임·위탁받아 수행하는 기업인이나 전문가 그룹의 외부인사를 말한다. 김영란법이 규정한 '공직자 등'은 아니지만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윤정길 송진영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