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랫말 직접 작사 앨범 출시
- 매주 시장서 게릴라 콘서트
- 발로 뛰어다니며 CD 홍보
- 요즘 방송서 하루 6·7회 선곡
- 8월 트로트 차트 49위 '얼떨떨'

- 노래는 봉사활동의 연장일뿐
- 번 돈 모았다가 이웃돕기 기부

'국제시장 못 잊어서 찾아 왔네/ 꽃분이네 생각나서 또 다시 왔네/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여기가 국제시장인가…'.

상인가수 최규식 씨가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 골목에서 관광객들의 요청을 받고 즉석에서 자신의 노래 '국제시장'을 부르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g@kookje.co.kr

상인가수 최규식(56) 씨가 부른 '국제시장'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부산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국제시장을 넘어 인근 부평깡통시장을 뒤흔들고, 자갈치를 지나 영도다리를 가볍게 건넜다. 영도에선 아이들까지 '국제시장'을 따라부른다고 한다. 지상파, 인터넷 할것 없이 라디오 방송들이 앞다퉈 '국제시장'을 선곡해 올리고, 버스·택시기사들은 새 손님 태운듯 어깨를 들썩거린다. 노래방에도 '국제시장'이 짱짱 올려나온다.

한국DJ클럽이 집계한 8월 둘째주 '국내 트로트 차트'에서 '국제시장'은 49위에 랭크됐다. 놀라운 순위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 후속타로 클린 히트다.

장사하랴, 공연하랴, 홍보하랴 눈코 뜰새없이 바쁜 최규식 씨를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에서 만났다. 최 씨는 "노래가 뜨니 국제시장이 뜨고 우리 부산이 같이 뜨는 것 같다. 노래하는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명소 넣어 직접 가사 써

-'국제시장' 인기가 대단하다. 본인은 어떻게 느끼나?

"피부에 그대로 와닿는다. 방금 모 방송국 담당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오전 가요 프로에 '국제시장'이 선곡됐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요즘 각종 방송에서만 내 노래가 하루 평균 6~7회 선곡되고 있다. 솔직히 얼떨떨하다."

-인기 비결이 뭐라고 보나?

"역사와 전통의 국제시장을 트로트 풍으로 신나게 노래한 것이 먹힌 것 같다. 곡조가 아주 멋지다."

-작사 작곡은 누가 했나?

"작사는 내가 했다. 용두산 벤치에 앉아 부산항을 굽어보며 썼다. 영화 후속타를 겨냥한 만큼 '꽃분이네' 가게를 넣고, 부산의 명소인 영도다리, 용두산, 광복동 같은 지명도 살렸다. 완전 부산 노래다. 아내가 가사를 많이 다듬었다. 곡은 전문 작곡가 김정일 선생이 썼다. 히트곡을 갖고 계신 분이다."

-영화 '국제시장'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영화 찍을 때 많은 시장 사람들이 장사 못한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그때 스텝들이 우리 가게에서 작전회의를 했다. 그리고 내가 나서 영화를 찍으면 실익이 많을 거라고 상인들을 설득했다. '국제시장' 엔딩 크레딧 자막의 '도움을 준 사람들'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 있다."

-영화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맞다. 영화 개봉 한달 뒤 내 노래가 나왔다. 2015년 2월에 음원 등록이 됐으니까. 영화 막바지의 명대사는 요즘도 내가 무대에서 즐겨 소개하는 멘트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이 말을 하고 나면 지금도 울컥한다."

■발로 뛰며 전방위 홍보

-음반은 몇 개나 냈나?

"모두 9개다. 부산에서 이만큼 낸 사람이 없을 거다. 트로트 메들리도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판다. '국제시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 청춘'이란 노래가 제법 히트했다. 이래봬도 족보가 있다."

-노래 홍보를 어떻게 했나?

"무명이 별 수 있나, 발로 뛰어다녀야지. 정말 부지런히 많이 돌아다녔다. 택시기사들도 엄청 만났다. 이제 그쪽 세계를 훤히 안다. 전국에 택시가 약 25만대 있고, 서울에 7만2000대, 부산에 2만6000대가 있다. 기사들을 닥치는대로 만나 홍보용 CD를 뿌렸다. 나눠준 것만도 2만5000장 정도 된다. 나중에는 많은 택시기사들이 팬이 돼 있더라."

-관광버스도 많이 탔다고 하던데.

"영도다리 주말 도개 행사때면 전국에서 관광버스가 20~30대씩 온다. 기사들에게 양해를 얻어 일일이 버스에 올라 '제가 국제시장 가수 최규식 올시다. 직접 한번 들어보실래예' 하고 노래를 불렀다. 어떨 땐 너무 재미있게 놀다가 버스가 출발하는 바람에 신대구고속도로 청도휴게소에서 돌아온 적도 있다."

-부산에선 어떻게 홍보했나?

"영화 '국제시장'이 터진 후 '꽃분이네' 가게 앞에서 주말마다 게릴라 콘서트를 했다. 55회나 했는데 매번 수백명씩 몰렸다. 요즘은 초청 행사가 많아 바빠서 못하고 있다."

■국제시장 노래 이색 경연대회

-언제부터 노래를 했나?

"고향이 대구인데, 아주 어릴 때부터 했다. 어른들이 시키면 부끄럼없이 불렀다. 그러다 2005년 자갈치 축제 일환으로 열린 가요제와 40계단 축제 가요제가 있었는데, 두 곳에서 모두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때 가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정식 데뷔는 언제 했나?

"2011년 '내 청춘'이란 타이틀로 앨범을 냈으니 그게 데뷔인 셈이다. '국제시장'이 뜨니 다시 데뷔한 기분이다."

-연습은 어디서 하나?

"매일 아침 구덕산에 간다. 발성연습을 하거나 MR(녹음된 음악)을 털어놓고 목청을 다듬는다. 일상이 됐다."

-지난 5월엔 제1회 국제시장 노래 경연대회가 열렸다는데.

"대단했다. 예심에 전국에서 100명 참가했는데 그중 13명이 본심에 올라갔다. 관객이 무려 4000명 가량 운집했다. 17인조 밴드에 맞춰 지정곡인 내 노래 '국제시장'만 부르게 했다. 아주 독특한 가요제다. 내년엔 4월에 연다."

-매니저는 없나? 추후 어떤 스케줄이 있나?

"섭외 홍보 이동 매이커업 등을 혼자 한다. 9월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여기저기 지역축제에 초청돼 있고, TV 가요쇼에도 나가야 한다. 지난해 KBS 아침마당에 나간 적이 있고, 최근엔 모 방송에서 다시 출연 섭외가 들어와 있다."

-노래방에서도 '국제시장'을 부를 수 있나?

"트로트 랭킹이 장난인줄 아나? 많진 않지만 '국제시장' 작사자로서 저작권료도 받고 있다. 올초엔 팬클럽도 생겼다. 200여 명의 회원이 나를 돕고 있다."

-출연료 등 수입도 제법 많을 것 같다.

"얼마를 벌 것 같나?(웃음) 얼마전엔 CF도 찍었다. 약간씩 번 돈을 모았다가 불우이웃돕기나 봉사 활동에 쓴다. 시장 일을 하면서 터득한 생리다. 내 노래도 실은 봉사활동의 연장이다."

-왜 노래를 하나?

"노래는 세상을 즐겁게 하는 청량제다. 난 노래할 때마다 가슴 속에 애국심, 애향심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혹시 대박나면 서울로 올라갈 건가?

"중앙무대에 출연은 하겠지만, 서울에서 살 생각은 없다. 내 청춘의 땀이 밴 부평깡통시장을 지킬 것이다."


# 인터뷰 언저리

- 17년째 가게 운영하면서 트로트 10대 가수상 등 수상
- 국제시장 소재 가요 맥 이어

최규식 씨가 영화 '국제시장'의 무대인 꽃분이네 앞에서 지난 봄 게릴라 콘서트를 벌이는 모습.

'국제시장' 가수 최규식 씨는 부산 중구 부평동 부평깡통시장에서 '장수건강원'이란 탕제원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17년째라고 한다. 그를 만나러 갔더니 다슬기 다리는 중탕 기계음이 요란했다. 10평 남짓한 탕제원으로 들어서자, 안쪽에 최 씨의 CD와 각종 상패, 수상 트로피 등이 진열돼 있었다. 무명가수가 힘겹게 성장해온 과정을 보는 듯했다.

"이 가게가 이래도 족보있는 곳입니다. '빨간 구두 아가씨'를 부른 남일해 선배, 가요계의 전설인 남진, 김상희, 쟈니리 같은 가수들이 우리 가게를 다녀갔어요. 뽀빠이 이상용도 왔지요. 이들이 부산에 내려오면 내가 뛰어나가 안내 하고 식사 대접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도 오게 되더라고요."

수상 이력을 보니, 2012년 말 한국방송가수협회가 수여한 '트로트 10대 가수상'과 2015년 1월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가 주는 '연예발전 공로상'이 있다. 권위있는 단체에서 그의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표였다.

최 씨의 '국제시장'은 어떤 의미에서 부산 트로트의 새로운 계보를 형성하는 노래다. 대중가요에 '국제시장'이 나오는 노래가 '굳세어라 금순아' '경상도 아가씨' 정도였는데, 최 씨가 그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가수 최대호(61) 씨는 "가요 '국제시장'은 지역정서가 강하고 따라 부르기 쉬워 계속 뜰 가능성이 있다"면서 "전국민이 부르는 애창곡이 되면 자연스럽게 부산 트로트의 계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기자가 시장통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하자, 최 씨는 즉석에서 '국제시장'을 불러재꼈다.

지나가던 행인들과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그런 최 씨를 찍었다. 그는 이미 인기스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