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추돌 후 도주 중 차선 변경
- 면허갱신 때 뇌전증 기재도 안해
부산 해운대구에서 벌어진 7중 교통사고(본지 지난 3일 자 등 5면 보도)의 수사가 새 국면을 맞았다. 가해자가 뇌전증(간질)이 아니라 뺑소니 사고 후 도주를 하다가 참변을 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경찰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해운대경찰서는 뇌전증으로 사고 당시 의식이 없었다는 가해 차량 운전자 김모(53) 씨의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가해자가 7중 교통사고 현장인 해운대문화회관 600m 앞에서 뺑소니 사고를 냈다고 설명했다. 대천공원에서 부산도시철도 2호선 장산역 방면 편도 3차선 도로 중 2차로를 달리다가 양운고 근처에서 앞서 달리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그 이후 김 씨는 3차로로 차선을 변경해 버스 사이를 빠져나가며 주행하다가 다시 1차로로 옮겼다. 이어 100m 상당의 1차로를 시속 100㎞ 이상의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해운대문화회관 교차로에서 대형 참사를 냈다. 이 모습은 사고 현장 근처의 CCTV와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에 그대로 담겨 있다.
경찰은 차들을 피해 차로를 변경한 점으로 미뤄 의식을 잃었다는 가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1차 추돌한 뒤 도주하는 과정에서 과속하면서 대형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은 김 씨가 뇌전증을 핑계로 사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려는 게 아닌지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김 씨가 '책임무능력자'는 형을 면제해주도록 한 형법의 조항을 노린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책임 무능력자에는 14세 미만인 미성년자와 뇌전증과 알코올중독 등 심신상실자가 포함된다.
해운대경찰서 이익환 교통사고조사계장은 "심신상실의 최종 여부는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가 아닌 재판에서 판사가 판단한다"면서 "김 씨가 진술하는 운전 중 뇌전증 증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등을 꼼꼼하게 수사한 뒤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가해자를 상대로 허위진술 여부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대학병원 신경전문의와 도로교통공단에 사고원인 분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경찰은 뺑소니 후 도주 여부 외에도 고혈압과 당뇨병 등의 관련성도 살피고 있다. 또 브레이크 결함이 참사로 이어졌는지 아닌지도 따져보기로 했다. 수사의 결정적 단서가 될 블랙박스 내 SD 카드는 사고 충격으로 튕겨져 나가 분실됐으며 수차례 수색했으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충돌 전 차량의 작동 상태를 기록해주는 사고기록장치(EDR)는 가해 차량에 부착돼 있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김 씨의 몸 상태가 호전되는 즉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한편 김 씨는 지난해 11월 19일 부산 북구 화명동에서 볼라드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사고를 내면서 어지럼증을 느꼈던 그는 같은 달 23일 울산의 한 병원에서 뇌전증 확진 판정을 받고 하루 두 차례 약을 먹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달 12일 면허갱신 정기적성검사에서 질병 기재란에 뇌전증 사실을 표시하지 않았다.
김화영 기자 hongd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