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6월부터 전면 시행

- 부산 50명 638곳 나눠 배치

- 호감형 선발·실적홍보 혈안

- 학생부장과 월1회 정보교류도

- 대부분 식사자리 형식에 그쳐

- 두 경찰관, 소문·의혹돌자 사표

- 상부 보고 안돼…징계없이 수리

- 부산경찰청 "진위 파악이 우선"

부산의 학교전담경찰관이 자신의 관리 대상이었던 여고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전담경찰관제의 부실한 운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또 경찰이 이 같은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사표를 정상적으로 수리했다는 정황이 포착돼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이 경찰 조직 전체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항이지만 부산경찰청과 해당 경찰서는 무대응으로 일관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전문성 떨어지고 실적에 쫓기고

학교전담경찰관제도는 폭력적인 졸업식 뒤풀이, 청소년 알몸 촬영 등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2012년 전국 지방경찰청 16곳에서 시행됐다. 경찰관 1명이 학교 10여 개를 전담하며 학교 폭력 순찰과 예방 교육, 학생 상담 등을 맡는 것이 골자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학교 폭력이 눈에 띄게 줄었고, 청소년 비행 예방 효과도 거둬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입 취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부산경찰청 소속 학교전담경찰관은 50명(남자 36·여자 14명)으로, 이들은 부산 초중고교 638곳을 관리한다. 학교관리전담관 1명당 학교 12곳을 담당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찰관 1명이 지역별로 배치돼 남녀, 초중고교 모든 학생을 상대하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을 받고 있다.

학교와 경찰 간에 정보 교류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 김모(36) 씨는 "한 달에 한 차례 학생부장과 경찰 관계자가 만나지만 학교폭력이나 학생에 관한 정보를 나누기보다 식사만 하는 형식적인 자리에 그친다. 만약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지면 '알고 있었으면서 왜 처리를 못 했냐'는 지적을 받는 게 서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학교전담경찰관을 경찰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홍보하는데 치우치면서 과도한 실적 쌓기가 낳은 부작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학교전담경찰관이 학생을 잘 관리해 학교 폭력을 예방했다는 내용은 경찰의 단골 홍보 내용이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경력이 짧더라도 젊고 호남형이 학교전담경찰관으로 선발된다"면서 "문제 학생을 모범생으로 만들어 경찰청에 보고하면 실적이 쌓여 승진에도 도움이 된다. 학생을 오래 만나 문제를 해결할수록 평가를 좋게 받는데, 친근감이 변질돼 부적절한 처신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등학교 상담 교사 하모(여·29) 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즘 학생의 특성을 잘 모르는 경찰이 상담 실적을 내려고 섣부르게 다가서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남자 경찰과 여고생이 차 안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단둘이 만나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데 매뉴얼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쉬쉬'…퇴직금 다 받고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논란은 문제를 일으킨 경찰이 사표를 제출해 아무런 처벌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기 전 사직서를 제출해 민간인 신분이라 공무원의 윤리 잣대를 들이댈 수 없고 정상적으로 사표가 수리돼 현재까지는 퇴직금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해당 경찰서에서 이런 사실을 알고도 이들의 사표를 처리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경찰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하경찰서 A(34) 경장은 이달 초 자신의 관리 대상이던 여고생과 차 안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해당 학생은 지난 7일 이 사실을 학교에 알렸고, 해당 학교 교사는 사하서 여자 경찰관에게 이를 알렸으며 A 경장은 9일 사표를 제출했다.

연제경찰서 B(31) 경장은 1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여고생과 지난 4월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 이후 해당 학생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학생의 상담을 맡은 상담기관에서 지난달 23일 연제서에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B 경장은 지난달 10일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두 경찰서 는 부산경찰청에 이 같은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으며, 문제가 불거진 지난 24일부터 이 문제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부산경찰청 역시 사실 파악이 우선이라며 정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학교전담경찰관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지만 문제 파악과 대책 마련에 앞서 진위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경찰의 사표를 수리하기 전에 이 같은 내용을 보고 받지 못했다"면서 "현재 민간인 신분이어서 사건 경위부터 파악한 뒤 여고생에게 부적절한 관계를 강압적으로 요구했는지 등 문제가 될 부분이 있다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여성단체가 학교전담경찰관과 관련한 학생들의 피해 사례를 조사하기로 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이재희 소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접수되고 있어 전국적으로 피해 사례를 모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주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