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 복원 마스터플랜 없어
- 겉만 화려한 둔치정비 힘 쏟아

- "그늘 부족" 성화에 나무 심어
- 하천 범람땐 대형참사 가능성

- 산책로 없는 금정구는 손 놓아
- 침수지에 화단 만들어 예산낭비

"이게 체육시설이지 무슨 생태하천입니까?"

29일 본지 취재진과 온천천을 함께 둘러본 생명그물 이준경 정책실장은 "10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이렇게 쓰나"라며 한탄했다. 온천천에서 생태 복원의 성과는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체육시설은 즐비했다. 지역 특색을 살려 관리하자는 취지를 살리기보다는 주민 민원에 떠밀려 꽃을 심고 헬스장을 만드는 식으로 하천을 관리한 탓이다.

29일 부산 연안교에서 바라본 온천천. 연제구 관할 지역(왼쪽)에는 풀을 베지 않은 반면 동래구 관할 지역은 풀을 모두 베어내 한 하천에 두 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설계와 다른 온천천 관리

온천천은 애초 동래구 구간은 자연형 하천으로, 연제구 구간은 공원형 하천으로 설계됐다. 이는 온천천에 난 자전거 길과 보행로를 보면 알 수 있다. 연제구 구간에는 보행로가 물가에, 자전거 길이 둑 아래로 있어 두 길이 다소 떨어져 있다. 반대로 동래구가 관리하는 곳에는 보행로와 자전거 길을 나란히 놓아 둑 아래로 붙였다. 수생태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사람의 손길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였다.

애초 설계대로 운영하려면 동래구 구간에는 풀을 베는 것이나, 체육시설 설치를 최소화해야 했지만 두 곳에서 차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안락교 인근과 같이 연제구는 풀을 안 베고, 동래구는 풀을 베어버려 설계와 반대로 관리가 된 곳도 있었다.

자동판매기 설치 같은 지엽적 규정 역시 기초자치단체마다 의견을 달리한다. 동래구는 자판기 설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연제구는 관리사무소 바로 옆에 자판기를 설치했다. 그렇지만 이 자판기 관리는 좀처럼 안 되고 있다. 연제구가 설치를 허가한 자판기는 위생관리가 엉망이었다. 연제구 온천천관리사무소 인근을 지나던 방문객이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에는 개미 10여 마리가 둥둥 떠다녀 깜짝 놀라게 했다.

■하천에 나무, 상습침수지에는 꽃

하천변에 나무를 심는 이상한 일도 일어나고 있다. 연제구는 나무를 좀처럼 심지 않는 반면 동래구는 하천 옆 곳곳에 나무를 심었다. 하천은 범람 위험이 있어 나무를 심는 데 신중해야 한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 물길을 막으면 예기치 않은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어서다.

동래구는 뚜렷한 기준 없이 주민 민원에 떠밀려 나무를 심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래구 관계자는 "하천에는 원칙적으로 나무를 심으면 안 되지만 그늘이 부족하다는 주민 성화에 나무를 심었다"며 "주로 가로수를 정리하다가 남는 나무가 있으면 그때그때 심는다"고 설명했다.

금정구는 온천천 관리에 사실상 손을 놓았다. 금정구 구간인 온천천 상류 곳곳에는 생활 쓰레기가 방치된 상태로 놓여 있었다. 산책로가 없어 사람의 손길이 쉽게 가지 않는 곳이다. 금정구의 올해 온천천 관리 예산은 5500만 원이다. 동래구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전액 부산시로부터 받은 예산이어서 사실상 구비를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상습 침수구역인 금정구 부곡교 인근에 화단을 조성하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 이강국(40) 씨가 "저곳은 비만 오면 물에 잠겨 꽃이 모두 쓸려 내려가는 곳이다. 저렇게 예산을 낭비하는 구는 제정신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곳곳에 헬스장만

온천천 개발은 원래 생태 복원이 주목적이었다. 동천·삼락천과 함께 '똥천'으로 분류됐던 온천천의 생태를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나왔다. 당시 수영강에 요트경기장을 만들었지만 오물이 내려오는 탓에 국제 망신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경기가 열리기 직전 소방차와 덤프트럭을 동원해 수천 t의 물과 황토를 쏟아부어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 이후 하천을 살리자며 1995년 온천천을 개발했지만, 현재 생태계가 복원된 곳은 찾아보기 어렵고 체육시설만 난립한 거대한 헬스장이 됐다.

온천천 관리에 대한 마스터플랜 없이 주민이 꽃을 심으라면 꽃을 심고, 체육시설이 부족하다면 체육시설을 설치하는 식으로 공원을 관리했다. 결국 수생태 복원보다는 겉만 화려한 둔치 조경사업에 힘을 쏟았다.

한때 통합관리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돼 2008년 부산시가 '온천천·대천천 관리팀'을 만들었으나, 인원과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3년 만에 슬그머니 기구가 없어졌다. 같은 시기에 시민단체·주민·행정기관이 참여하는 '온천천 통합자문회의'가 구성됐지만, 2010년 이후 한 차례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 온천천 주요 정비사업 시기 사업명 사업비 1999년 하천 정비사업 36억 원 2004년 자연형 하천 정비사업 2단계 52억 원 2004년 하류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 4억 원 2005년 자연형 하천 환경정비사업 5억 원 2013년 상류 정비사업 42억 원 2011년 종합정비사업 425억 원 2012년 하류 생태하천 복원사업 33억 원 2016년 비점오염 저감 시설 10억 원 2016년 나무덱 조성 5억 원 2006년 부터 유지용수 공급  매년  7억2000만 원 ※ 자료 : 연제·동래·금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