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서관 1, 2층을 연결한 자료실 계단에서 시민들이 편하게 앉아 책을 보고 있다.

- 시험 위한 자습실 개념 탈피
- 지식·상상력의 커뮤니티로
- 칸막이 없애고 계단을 서재로
- 아무데나 앉는 곳이 열람실

- 그림책 읽어주기, 실내음악회…
- 다양한 문화행사 무대도 돼
- 은퇴자 등 고령층 이용 증가세

도서관을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좌석마다 세워진 높은 칸막이와 교과서 참고서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기침이라도 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주변 눈초리들. 어디 그것뿐인가. 열람실 자리를 잡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새벽부터 줄을 섰던 추억까지.

21세기 도서관은 바뀌었다. 지식과 상상력, 창조력의 보고이자 독서와 문화 관련 행사가 펼쳐지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유형의 지식놀이터가 바로 도서관이다.

■서울도서관-도서관 변신의 상징

지난 2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 이 도서관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고풍스러운 건물 외벽에 붙었다. 서울도서관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지어져 해방 후 서울시 청사로 사용됐다. 서울시가 새 청사를 건립하면서 2008~2012년 641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뒤 서울도서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등록문화재 제52호인 건물을 도서관으로 변신시킨 것 자체가 당시로선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도서관은 서울 심장에 자리 잡았다. 서울광장이 바로 앞, 덕수궁이 오른쪽에 있으며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이 뚜렷하게 보인다. 도서관은 조용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나 덕수궁을 찾는 주민들은 서울도서관을 필수코스처럼 들른다. 한 해 방문자가 2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도서관 내부도 달라졌다. 칸막이가 쳐진 열람실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이용자들은 책과 잡지, DVD로 둘러싸인 자료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자료실 테이블에는 외국 영화에서 보던 개인 스탠드, 노트북 등 다양한 전자기기가 놓여 있고 콘센트까지 마련돼 있다. 이쯤에서 그치지 않는다. 1층 자료실 천장을 깨고 2층 자료실과 연결했다. 1, 2층을 잇는 계단 겸 서재에서 시민들이 바닥에 앉거나 엎드려 책을 본다. 여기서 유명 저자 강연과 문화 공연이 열리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과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도 촬영했다. 이쯤 되면 서울도서관을 지식놀이터로 불러도 될 것 같다.

■부산-놀이터 변신 중

	정관도서관의 둥근 소파. 어린이들이 눕거나 걸터앉아 편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지난 5일 오전 부산 기장군 정관어린이도서관. 토요 그림책 읽어주기 교실이 열렸다. 조현미 동화구연 가가 핸드마이크를 들고 동화책 '까마귀네 빵집'을 읽었다. 엄마와 아빠 품에 안긴 3~7세 아이 20여 명이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바로 옆 자료실에는 서가 사이에 만들어진 동그란 좌석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긴 자리에 앉거나 누운 채로 책을 읽었다. 정관어린이도서관은 윗골공원 안에 있어 봄이 되면 도서관 건물 앞에 펼쳐진 장미공원에 장미가 만발한다. 인근 정관도서관 풍경도 비슷했다. 특히 어린이자료실 모습은 놀이터 그대로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바닥은 온돌을 놓아 따뜻했으며 테이블보다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독서를 즐기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광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4월 부산 대표도서관인 시립시민도서관에서 역사적인(?) 이벤트가 개최됐다. 도서관 1층 로비에서 BNK 실내악단의 클래식 공연이 열린 것이다. 그동안 각 도서관의 홀에서 클래식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이 벌어졌지만 로비로 뛰어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도서관 측은 이용자들의 항의를 우려했지만 걱정과 달리 3, 4층에서 공부하던 수험생들까지 나와서 공연을 감상하고 박수를 쳤다.

부산의 도서관도 변하고 있다. 대부분 도서관이 해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소문난 프로그램은 일찌감치 매진된다. 이를 위해 도서관마다 일반 열람실과 다양한 자료실 외에 시청각실, 교양강좌실, 문화강좌실, 문화교실 등을 열고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한다.

■은퇴자들도 놀이터로

	정관어린이도서관에서 한 어린이가 쳇바퀴처럼 생긴 좌석에서 책을 읽는 모습.

지난 1월 현재 부산 인구는 355만9233명이고 이 중 65세 이상 고령층은 51만8585명으로 14.6%를 차지한다. 고령화는 부산의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특히 최근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은퇴하면서 전문직, 관리직 등 사회 경험이 많은 지식층 고령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했다. 여기서 도서관 역할이 부각된다. 이들을 흡수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대부분의 도서관 사서는 최근 몇 년 동안 고령층 이용자가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주로 신문과 잡지, 책을 보는 자료실을 이용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수치로 잡기는 어렵다. 그 대신 한 번이라도 도서관을 방문하면 적잖은 고령층 이용객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령층 대상 프로그램도 증가 추세다. 시민도서관의 경우 지난해 어르신 대상 프로그램이 6개였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4개를 편성하며 비율을 늘렸다.

시민도서관 조수금 도서관 정책부 주무관은 "도서관은 누구나 편하게 들러서 책을 읽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식놀이터"라며 "최근 은퇴한 고령층과 주민의 참여가 늘어나 지역 커뮤니티 역할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국 유정환 기자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