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70대 주민들 삶의 본질 성찰

산복도로에서는 대문만 열고 나오면 누구나 '철학'을 접할 수 있다. 3년 전 시작한 인문학 강좌에 50대 여성, 70대 어르신의 반응도 좋다.

부산 중구 대청동에 사는 홍순업(70) 씨는 5개월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다.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산에 들어간 차라투스트라가 10년간 수행 후 세상 밖에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는 내용이다.

홍 씨가 니체를 접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집 바로 옆에 있는 문화센터에 니체 강좌가 개설된 걸 알았다. 홍 씨는 "70년을 살았지만 그동안은 왜 살아야 하는지, 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별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며 "요즘 철학 공부를 하면서 행복한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은미(여·52·연제구 연산동) 씨도 인문학을 배우러 3년째 산복도로를 찾고 있다. 요즘에는 반야심경에 빠져있다. 서 씨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공부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책을 여럿이 읽는 즐거움도 남다르다. 서 씨는 "60, 70대 어르신도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그 나이대의 생각이나 철학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부산 중구 대청동 커뮤니티 문화센터 '금수현의 음악살롱'에서는 2014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산복도로 생활인문 콘텐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과 철학박사가 함께 읽어가는 니체 강독' '어르신들과 동아대 교수가 함께 읽는 반야심경강독' 등 쉽지 않은 주제지만, 강좌당 10여 명의 수강생이 꾸준히 등록한다. 이들은 한 달에 두 번 금수현의 음악살롱에 모여 책을 소리 내 읽고, 의견을 나눈다. 동아대 김명우, 김은철(교양교육원) 교수 등 해당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가 수강생과 함께하며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해당 프로그램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커뮤니티문화센터 황정미 센터장은 "마을재생을 위해 벽화나 청소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인문학이야말로 마을재생의 기본이라고 생각해 인문학 강좌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산복도로 생활인문 콘텐츠 프로그램 강좌는 한 달에 두 번 열리며 오는 11월까지 예정돼 있다. 산복도로 인근 주민뿐 아니라 누구나 들을 수 있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