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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경 권혁도 씨 부부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을 배경으로 고사리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완용 기자 |
- 남편 병치레 후 낙향 결정
- 임야 고사리밭 사들이고
- 농업대학 오가며 1년간 공부
- 품질좋다 소문나며 주문 쇄도
- 전국에 직접 배달해 유대 형성
- 가족 먹을 양도 없을 만큼 인기
- 일 없을 땐 묘목 길러 용돈벌이
- 농진청 주부 블로그 기자 활동도
경남 남해군 창선면 소재지에서 삼동면 지족 방면으로 가다가 끝자락에 있는 농협주유소에서 산 쪽을 바라보면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보인다. 박미경(54) 권혁도(60) 씨 부부의 귀농 보금자리다.
박 씨는 남해군 설천면 동비란마을이 고향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 모두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으로 이사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모직에서 근무하다가 대구에서 나고 자라 같은 직장에 다니던 권 씨를 만나 사내결혼을 한다. 권 씨는 1996년 회사를 그만두고 가내공업을 차렸고, 연간 4억~5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키웠다. 그러던 중 권 씨는 지난해 초 뇌동맥 혈류에 이상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게 되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회사를 넘기고 먼저 경남 남해로 내려와 터전을 꾸린 부인의 귀농에 합류했다.
■ "농사 좋아했지만 경험은 없어요"
박 씨는 유달리 작물 기르는 일을 좋아했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은 없지만, 언젠가 딸이나 며느리에게 직접 키운 농산물을 나눠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늘 품어왔다고 한다.
그녀는 2006년께부터 나이가 들면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농사지을 땅을 알아보고 다녔다. 처음에는 서울을 떠나기 싫어 수도권 땅을 물색했는데, 집을 짓기 위한 땅 200~300평을 사려면 억대가 필요했다. 땅을 알아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농사일을 배우기 위해 허브농장에서 아르바이트하기도 했다. 또 강원도 고성의 한 허브농장에 투자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가 남해의 한 야산을 소개했다. 바다가 보이는 임야를 소개받자 박 씨의 고향으로 귀농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고,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2009년 무렵의 일이다.
■ 경기도 안양, 남해 오가며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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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에서 키운 고사리를 포장해 놓은 상태. |
2500평의 임야에는 고사리밭이 조성돼 있었고 텃밭이 딸린 데다 무엇보다도 전망이 좋았다. 집터에서 보면 왼쪽으로 멀리 사천 앞바다, 오른쪽으로는 지족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과도 적당한 거리에 있고 창선면 소재지여서 금융기관이나 마트 같은 시설도 있어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어 보여 '이곳이 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곳'이라는 생각에 임야를 사들였다.
이때부터 경기도 안양에서 남해까지 오가는 생활이었다. 결국, 남해군청 인터넷 홈페이지를 검색하다가 알게 된 농업기술센터의 농업대학에 다녔다. 매주 버스를 타고 안양에서 남해로 와 교육을 받았다. 주위에서는 '미친 게 아니냐'고 놀렸다. 남편 권 씨도 '한두 달 저러다가 말겠지' 싶어 말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박 씨의 공부는 1년간 계속됐다. 밤 9시께 수업이 끝나면 남해의 친척 집이나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안양으로 올라갔다. 강좌는 친환경 무공해 농법이었다. 박 씨는 2009년 한 해를 꼬박 그렇게 보내며 귀농을 준비했다.
■ 고사리 품질, 소비자가 인정해줘
땅은 맹지였다. 진입로가 없고 집을 지을 터도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농업대학 공부를 하려 다니면서 땅을 고르고 집터를 다졌다. 처음에는 집을 짓지 않고 마을의 빈집을 사 리모델링해 쓰려고 했다. 그러나 마을 한가운데 집이 있으면 외지 친구들이 방문하거나 소비자들이 몰려와 행사라도 벌이면 마을 주민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남편의 지적에 따라 집을 짓게 됐다.
고사리 농사는 그다지 쉽지 않았다. 2010년 마을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고사리를 채취했다. 할머니는 고사리가 아깝다며 질긴 아랫부분까지 꺾었던 까닭에 일일이 뒷손질해야 했다.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광주의 한 상인이 115㎏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박 씨는 남편과 함께 물건을 싣고 직접 배달까지 했다. 택배로 보내도 되지만 고객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자신이 지은 농산물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박 씨가 생산한 고사리의 품질은 소비자들이 알아줬다. 안양의 아파트단지 부녀회에서 단체로 구매하고, 다니던 교회에도 단골손님이 생겼다. 박 씨는 지난해 고사리를 ㎏당 7만~7만5000원에 팔았는데, 지금은 가족이 먹을 게 없을 정도로 물량이 달린다고 한다.
■ 농진청 주부 블로그 기자로 활동
박 씨는 지난해 경기도 여주에서 화훼농장 하는 이를 만나 묘목 기르는 일도 하고 있다. 40여 평의 땅에 무화과나무를 6개월 가까이 키워 140만 원을 받았다. 따뜻한 지역에서 정성껏 잘 키웠다며 다른 사람보다 평당 5000원 더 쳐줬다. 철쭉 100평도 3개월째 기르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농장주에게 보여주고 재배법을 익히기도 했다. 조경이나 정원 관리가 취미이던 박 씨는 묘목 재배에 재미를 붙였다. 새로운 용돈 벌이가 된 까닭이다.
박 씨는 고사리를 키울 수 없는 철이 되면 유자가공장이나 농산물선별장 등지에서 일 삯을 받아 생활한다. 일 삯은 하루 5만5000원. 도시의 아파트관리비만 있어도 농촌 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시골에서 소일하며 용돈 벌이라도 하면 생활비 부담도 덜 수 있다. 남편도 면사무소나 선거관리위원회 등지에서 시행하는 기간제 일을 하며 농한기를 보낸다. 농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박 씨는 농업진흥청 주부 블로그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기의 농사일기를 전하고 있다. 방송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등단은 하지 않았어도 안양여성문학회에서 10여 년간 활동한 바 있고 시나 수필을 쓰는 것을 즐기고 있다.
박 씨는 귀농 때 이웃과 잘 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해로 오기 전 귀농인들의 수기를 많이 읽고 직접 몇 분을 만나봤어요. 한결같이 마을 주민들과 잘 지내라고 하더군요. 동네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 잘하고 위안잔치나 경로행사에는 꼭 참석한답니다." 이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