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에 공식적으로 설치된 지금의 영도 한진중공업 수리조선소 부근 가무역장(假貿易場).

- 1876년 개항한 그해 창궐
- 3년 뒤 전문 피병원 개원

- 1886년 또다시 찾아들어
- 일본 상인들 거래 못하자
- 몰래 무역하다 적발되기도

19세기 초 콜레라의 등장은 인류에게 공포와 시련을 안겨준 가장 무서운 괴질이었다. 이 전염병은 1817년 인도 서북부 갠지스 강 유역의 캘커타에서 최초로 발생했는데, 당시 캘커타는 국제무역의 중심 항구였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이곳을 드나드는 무역선에 의해 세계 각국으로 전염병이 확산했다. 그러니까 관문은 사람과 화물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드나드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1821년에 발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콜레라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그 당시 육로 관문을 거쳐 전파된 이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음 해 이 괴질은 해상 관문인 동래부의 초량왜관을 거쳐 일본으로 옮겨갔을 것으로 보인다.

1883년 코흐가 콜레라균을 발견하여 드디어 예방접종이 시작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치사율은 거의 50%에 달했다. 그래서 초창기에 괴질이나 역병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었다. 1850년대 프랑스에서 콜레라가 창궐하자 화가 밀레(Jean-Francois Millet)는 그의 가족을 이끌고 바르비종이란 농촌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그는 뒤에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들어 그대로 눌러앉아 농부들의 일상사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이삭줍기'와 '만종'이란 작품은 이렇게 해서 탄생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밀레는 콜레라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1890년 여름, 부산항에는 일본 선원에 의해 대규모 콜레라가 발생하여 입항 선박에 대한 검역이 강화되고, 교통이 두절되는가 하면 심지어 학교까지 임시휴교 조치가 뒤따랐다. 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부산해관장 헌트(Johnathon H. Hunt)는 가족을 데리고 원산으로 피난 갔다. 그곳 원산해관장 관사에서 며칠을 묵고 있는데 웬걸 이놈의 콜레라가 어느새 이곳 원산까지 따라와서 야단법석을 떨더란다. 심지어 원산해관장이 어느 날 저녁, 우연히 개울가에 갔다가 우리나라 사람이 염을 한답시고 콜레라로 죽은 사람을 목욕시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며칠 후에 이 개울에서 이웃 일본인 부인이 채소를 씻더니만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남편이 콜레라로 죽었다고 했다. 북쪽인 원산항이 좀 더 안전할 것 같아 피난을 갔었지만, 보건위생이 낙후된 이곳 개항장도 콜레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1876년 개항이 되면서 부산항은 전염병 감염통로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마치 이를 증명이나 하듯 개항한 그해부터 부산항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많았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심한 가뭄까지 겹쳐 고통이 더욱 컸었다. 우리보다 먼저 개항한 일본은 해외로부터 전염병 침입이 잦았는데 조선의 관문인 부산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콜레라 발생으로 조정에서는 해항검역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이를 현장에서 통제할 만한 기관이 없었다. 드디어 1883년 개항장에 해관이 들어서고, 1885년에는 알렌(Horace Newton Allen)을 검역의사로 발탁하지만 부산항까지 담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급성전염병을 옮길 우려가 있는 외항선의 입항을 허락하지 않는 온역장정(瘟疫章程)도 개항 후 10년이 지난 1886년 5월 20일에서야 비로소 제정되었다. 그나마 부산은 1877년에 일본인 전관거류지역 내에 제생의원이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1879년에 다시 콜레라가 부산항에 발생하였을 때 개항 후 최초로 전염병 전문격리치료기관인 피병원(避病院)이 지금의 영도에 생겼다. 이 피병원은 전염병이 사라지면 일시 폐쇄되었다가 다시 발생하면 설치되곤 했다. 대개 콜레라는 10년을 주기로 창궐하였는데 1886년에도 불청객처럼 부산항을 찾아들었다. 그때도 처음부터 일본 상인 사이에서도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답답해하던 일본 무역상들은 동래부사의 승인도 없이 영도에 임시창고를 설치하고는 그곳에서 무역거래를 하다가 우리 관헌에 적발되었다. 전염병 때문에 임시방편적으로 설치하였다고 하지만 변방 사정으로 볼 때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라 로본영사를 책망하고 모두 철거했다.

당시 부산항감리서에서 근무하던 민건호(閔建鎬)는 '해은일록(海隱日錄)'을 통해 콜레라에 대처하는 관문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일본인 전관거류지역 내에 있는 부산해관에 업무를 보러 가려면 반드시 일본인 목욕탕 내 있는 소독소(消毒所)에 내려서 바닷물로 목욕한 이후라야 가능했다. 특히, 일본사람들은 전염병 감염을 막는다고 워낙 조선 사람들의 출입을 심하게 통제하는 바람에 큰 불편이 뒤따랐고 이에 대한 불평도 절로 나왔다고 했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