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우에 1박 일정 바꿔 귀항 결정

- 너울에 휘청…선장이 탈출 지시

- 피할 틈도 없이 물 쏟아져 들어와

- 배 잡고 버티던 4명 탈진해 손 놔

- 정신 잃지 않으려 서로 뺨도 때려

- 선장은 낚시꾼들 구하려다 참변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낚시 어선인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에는 선장과 낚시꾼 등 21명이 타고 있었다. 이 가운데 선장 김철수(46) 씨와 모객을 한 장모(54·부산 해운대구 송정동) 씨 등 14명이 부산·양산·창원 지역 사람이다. 하지만 구조된 이는 현재까지 3명뿐. 생존자와 해경의 증언을 바탕으로 모객부터 출발, 사고 전후, 생존자 구조까지 상황을 재구성했다.

출어 모객업을 해 온 장 씨는 주말을 앞두고 여느 때처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모객글을 올렸다. 생존자 이모(49·부산) 씨를 비롯해 바다낚시 모임 회원과 지인 등 13명이 장 씨를 따라 추자도 1박 2일 낚시에 나섰다. 지난 4일 오후 4시께 사상구 감전동에서 장 씨의 버스에 올라탄 이 씨 일행은 5일 새벽 2시께 전남 해남군 남성항에서 다른 낚시꾼과 만나 돌고래호에 올랐다. 당시 파도의 높이는 최고 0.5m로 추자도행 뱃길은 순탄했다.

돌고래호는 출항 2시간 뒤인 새벽 4시께 제주 하추자도 신양항에 도착했다. 이 씨 일행 등 낚시꾼은 이날 오전까지 추자도 인근 섬에서 낚시를 즐겼다. 하지만 오후 1시께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후 6시께에는 빗줄기가 굵어졌다. 당시 강우량은 시간당 20㎜로 더는 낚시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씨는 "비가 많이 내려 추자도에서 1박을 하려던 일정을 바꿔 하루빨리 집에 돌아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낚시꾼 의견에 따라 돌고래호 선장 김 씨도 귀항 준비를 했다. 오후 7시께 돌고래호는 이 씨 일행 등 낚시꾼을 태우고 신양항을 출발했다. 파도가 2m가 넘고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풍랑주의보는 내려지지 않은 상황. 선장 김 씨는 같은 시간대 다른 낚시꾼을 태우고 추자도를 출발한 돌고래1호(5t)와 자주 통화하며 안전 운항 여부를 확인했다. 비바람에 지친 낚시꾼 9명은 선수 쪽 아래 선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구명조끼가 비에 젖은 데다 불편한 탓에 상당수가 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출항한 지 20~30분이 지났을까. 배가 '쾅쾅' 소리를 내며 옆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완전히 전복됐다. 해경은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 씨가 오후 7시44분과 46분에 돌고래호 선장 김 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김 씨는 "잠시만"이라는 짧은 대답 뒤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보아 이때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한다.

어두운 밤, 악천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순식간에 배가 뒤집히자 낚시꾼들은 동요했다. 또 다른 생존자 박모(39·경남 양산) 씨는 "너울이 세게 쳐서 뒤집혔다"며 "잠들어 있었는데 배의 시동이 꺼지면서 선장이 밖으로 나가라고 했고, 배에 물이 들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전복된 배 위에 매달려 있던 사람은 이 씨와 박 씨 등 7명. 이들은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모두 바다로 던졌다. 이 가운데 4명이 바다로 휩쓸리고 3명은 버티다 어선에 구조됐다. 나머지 낚시꾼은 구명조끼를 입거나 꺼내 든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낚시꾼은 전복된 배 주변 해상에 떠 있었다. 이 씨 등은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선장 김 씨는 "배가 항해를 하면 어떤 무선 통신이 해경과 연결돼 있어 반드시 구조하러 온다"고 안심시켰다.

해경은 오후 7시50분께 추자항으로 되돌아온 돌고래1호가 돌고래호의 통신 두절 사실을 제주해경 추자안전센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밤 9시10분께부터 V-PASS(어선위치 발신장치)로 돌고래호의 마지막 위치와 탑승객 휴대전화의 최종 발신 위치 등을 파악해 일대 해역 수색에 나섰다. 돌고래호는 통신이 두절된 지 10시간여 뒤인 6일 오전 6시25분께 추자도 남쪽 무인도 섬생이섬 남쪽 1.2㎞ 해상에서 뒤집힌 채 발견됐다. 

제주=유정환 기자 di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