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4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동보프라자 2층 신나라레코드에서 한 고객이 음반을 고르고 있다. 매장면적 330㎡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음반을 찾는 사람이 없어 넓은 매장이 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 새 음반 출시땐 건물 밖까지 줄
- MP3 음원 다운로드 확산으로
- CD 찾는 이들 급격하게 감소
- 대형서점 음반 코너까지 가세
- 日 관광객마저 줄어 내년 폐업
"동보서적과 신나라레코드는 서면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만나기로 한 친구가 늦으면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거나, 레코드가게에서 앨범을 구경하며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어떤 때는 CD를 구경하며 하루 반나절을 보냈을 정도로 스무 살 시절 감수성을 채워준 곳입니다."(최동훈·36·부경대 법학과 99학번)
"학창시절 자우림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신보가 발매되면 가장 먼저 청음시설이 갖춰진 신나라레코드에 가서 테이프를 돌려 들어보곤 했습니다. 신나라레크드에서 앨범을 들으며 새로운 가수를 익히고 음악적 감성을 키웠어요."(이윤성·29·부산대 사학과 06학번)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옛 동보서적 건물인 동보프라자. 하루에도 수만 명이 모이고 흩어지는 이곳에서 조금만 고개를 들어 2층을 보면, 이름마저 낯설어진 '신나라레코드'가 있다. 서울의 신촌, 명동 같은 최대 번화가에서도 10년 전에 자취를 감춘 레코드점이 부산의 금싸라기 땅인 서면 한복판에서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지만 내년 8월이면 문을 닫는다. 스마트폰 등 온라인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CD를 찾는 사람이 사라지며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신나라레코드는 1998년 11월 문을 열어 올해로 17년째 영업 중이다. 면적 330㎡(100평). 단일 레코드매장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1998년 당시 '타워레코드', 'SKC프라자'와 함께 서면 레코드가게 '3강 구도'를 이뤘다. 신나라레코드 송상준(50) 대표는 1994년 신촌 파워스테이션에서 판매 직원으로 일하다 음반 시장이 호황을 맞았을 때 부산 중심가인 서면에 레코드점을 열었다. 송 대표는 "서면에만 레코드점이 10곳이 넘었을 만큼 당시 음반 시장이 각광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점 당시 신나라레코드는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대기 고객을 받을 만큼 문전성시를 이뤘다. 송 대표는 "새 음반이 나오면 지하 1층부터 건물 밖 도로까지 줄을 섰다. 음반을 담을 바구니를 나눠주면 꽉 채워 사 갔을 정도였다. 직원 9명이 현금출납기 3대가 갖춰진 계산대 앞에서 온종일 손님을 받았다. 지금은 격세지감"이라고 회상했다.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MP3 파일로 음원을 내려받는 문화가 확산하면서부터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형서점 음반 코너의 공세도 거세졌다. 그 이후 스마트폰 온라인 음악서비스가 보편화하면서 CD를 구입하는 사람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류열풍이 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인 관광객 덕에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서면이 주요 관광 코스가 되면서 한류 스타들의 앨범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매장 곳곳에 적힌 일본어 안내 문구가 당시 수요를 말해줬다. 이때 매장 일부를 한류 상품 코너로 만들며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지만, 한일관계가 급격히 나빠지고 엔저가 심화한 3년 전부터는 일본 관광객마저 줄기 시작해 이 역시 오롯이 재고로 남았다.
현재 많으면 하루 100만 원, 음반으로 치면 60~70장 정도의 매출을 기록한다. 송 대표는 "월세 1700만 원에 인건비를 빼고 나면 큰 적자다. 월세를 못 낼 때도 잦다"고 털어놨다. 주 고객층은 팝·클래식 마니아와 아이돌 그룹 팬들이다. 송 대표는 "요즘은 클래식 전공자들도 앨범을 안 산다. 취미로 즐기는 마니아들만 희귀 LP판이나 CD를 사가는 정도다. 또 엑소(EXO) 등 대형 아이돌 그룹이 신보를 내면 10대 팬들이 5, 6장씩 사가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음반 시장 불황으로 타워레코드 등 경쟁업체들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신나라레코드는 서면에 유일하게 남은 레코드점이 됐다. 하지만 신나라레코드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이미 건물주에게 영업중단을 통보한 상태다. 송 대표는 "음반 가격을 할인해줘도 사가는 사람이 없다. 당장에라도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지만 임대계약 기간이 내년 8월까지라서 그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그룹 퀸과 마이클 잭슨을 동경해 레코드점을 시작했다. 업종을 바꿀 수도 있었지만 평생 업으로 생각하며 장사를 계속했다. 문을 닫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 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지지만, 그 시절 음악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찾아 듣는 시대. 아날로그 감성의 대명사이자 서면의 마지막 음반점인 신나라레코드의 퇴장과 함께 또 하나의 '부산의 감성창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