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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지난 17일 러시아 벨라고르스크에서 마그다가치로 향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왼쪽부터 고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 씨, 안중근 의사 후손 안현민 씨, 이준 열사 외증손자 조근송 씨. 오른쪽은 국제신문 김화영 기자. 연합뉴스 |
- 79년 전 베를린올림픽 참가 위해
- 손기정 선수 열차타고 지났던 길
- 5957㎞ 달려 노보시비르스크에
- 객실서 만난 손기정 선생 외손자
- "조부, 올림픽 금메달 목에 건 뒤
- 조선인 축하모임한 곳 가 볼 것
- 피란와 온천장서 후배들과 훈련
- 부산과 할아버지는 각별한 인연"
지난 15일 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가 22일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TSR)에 올라 6박 7일 동안 광활한 타이가(침엽수림)를 뚫고 하바롭스크와 이르쿠츠크를 거쳐 5957㎞를 달렸다. 그동안 시간대도 4번 바뀌었다. 노보시비르스크 표준시는 부산보다 3시간 느리다.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도 1936년 6월 TSR에 몸을 싣고 올림픽이 열린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유라시아 대장정에 오른 원정대 250명은 18량의 객차 안에서 저마다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며 통일시대의 꿈을 그렸다.
■열차 안에서 '자유시 사변'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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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 조근송(왼쪽) 씨와 원정대원 윤승철 씨가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 내에서 '자유시 사변'으로 희생된 독립군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7일 오전 러시아 스바보드니 시에 도달한 유라시아 친선특급 내에서 특별한 제사가 열렸다. '자유시 사변'으로 숨진 독립군 수백여 명의 넋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협소한 객차 공간 탓에 '헤이그 특사'였던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 조근송(60) 씨와 윤승철(27·동국대 문예창작과) 씨가 대표로 음식과 술을 올렸다. 제수는 김과 밤이 전부였다. 조 씨는 "자유시 사변으로 무고하게 숨진 수백 명의 희생자를 꼭 위로하고 싶었다.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면 참 고맙겠다"며 윤 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유시 사변은 해외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아픈 대목이다. 1921년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군 3000여 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전쟁 원년 선포를 계기로 스바보드니로 집결했다. 통합 독립군을 조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독립군 내부에서 통수권을 누가 갖느냐는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그해 6월 28일 충돌이 발생해 수백여 명이 사망했다. 동국대 윤상원(대외교류연구원) 교수는 "좌우를 넘어선 통합 독립군 창설 시도가 그때 무참히 깨졌다. 현재 젊은이들이 자유시 사변을 교훈 삼아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씨도 "이준 할아버지는 '국토가 크고 인구가 많다 해서 큰 나라가 아니다. 괜찮은 청년이 많이 나는 나라가 진짜 큰 나라'라고 말씀하셨다"고 덧붙였다.
열차 안에서는 하루 5개 이상의 강의가 열린다. 고려인의 역사부터 보드카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강연이 끝나면 삼삼오오 식당칸에 모여 다시 한 번 열띤 토론을 벌인다. 한복 디자이너 권진순(여·56) 씨는 조각보 천을 잇는 바느질 작업에 한창이다. 그는 원정대가 적은 통일 염원 메시지 1000개를 이어 붙인 대형 태극기를 베를린에서 공개할 계획이다.
■부산 온천장과 손기정
"79년 전 청년 손기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11호 객차에서 손기정 선생의 외손자인 이준승(48) 씨를 만났다. 베를린은 그에게 기쁨과 아픔이 동시에 서린 곳이다. 외할아버지는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1위를 하고도 기뻐하지 못했다. 시상대에서 유니폼에 새겨진 일장기를 월계수 잎으로 가려야 했다. 이 씨는 이제 외할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 "아직도 베를린 주경기장에는 외할아버지의 기록이 '마라톤, 2시간 29분 19초, Japan'이라고 표시돼 있어요. 독일 올림픽위원회에 'Japan' 단어 삭제가 어렵다면 'Korean'을 함께 표기하라고 요구할 겁니다."
부산은 손기정에게 매우 각별했다. 그가 이끄는 선수단은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열린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 1~3위(함기용·송길윤·최윤칠)를 싹쓸이했다. 전쟁이 터지자 부산 온천장으로 내려온 손기정은 1951년 보스턴마라톤 2연패를 목표로 후배들과 훈련에 돌입한다. 그러나 보스턴마라톤조직위원회는 '많은 미국 청년이 한국에서 피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출전을 허락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 씨는 "손기정은 1955년 헬싱키올림픽 전까지 부산을 선수 양성소로 삼았다. 마라톤을 통해 '코리아는 건재하다'는 사실을 국제무대에 알리려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베를린에서 펼칠 또 한 가지의 계획이 있다. 손기정이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 일본의 눈을 피해 조선인들과 축승회를 한 장소를 찾겠다는 것이다. 당시 축승회가 열린 곳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으로 독립운동 후원가인 안봉근 선생이 운영하던 두부공장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6촌 손녀인 안현민(여·24) 씨는 "가족 친척 통틀어 여기까지 온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앞으로 함께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원정대 가는 곳 항상 친선축제…참가한 러 학생들 한국어 술술 구사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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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소녀들이 지난 19일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이칼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라시아 대축제'에서 제기차기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가 머무는 곳에는 항상 축제가 열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쪽잠을 자며 지난 19일 러시아 이르쿠츠크 시에 도착한 원정대는 바이칼 스타디움에서 유라시아 축제를 열었다. 풍물패의 길놀이에 이어 한·러 예술인들의 공연이 흥을 돋웠다. 도로폐예프 블라디미르 이르쿠츠크 부지사 대행은 환영사에서 "한국과 이르쿠츠크의 수교는 역사가 깊을 뿐 아니라 미래가 더 밝다. 오늘 대축제는 양국 관계를 좀 더 강화시키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1715년 카자흐 기병이 세운 조그만 기지촌에서 시작된 이르쿠츠크는 제정 러시아가 군주제와 농노제를 주장한 데카브리스트(12월 혁명당원)들을 유배시킨 도시다. '시베리아의 파리'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아름답다. 세계 민물의 5분의 1을 담고 있다는 바이칼 호수도 있다.
20일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러시아 청년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인 '한·러 차세대 리더 교류' 행사가 열렸다. 러시아에서는 이르쿠츠크 유라시아언어대 한국어과 학생과 이르쿠츠크 국립대 학생 3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 참가자들은 러시아어 문학·통상·국제지역학 전공자와 20대 직장인들로 구성됐다. 특히 러시아 측 학생들은 3분의 2 가량이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크리스티나 어니세느키(여·21) 씨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 두 나라의 협력관계가 계속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리나 볼로토바(여·19) 씨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국어를 공부하게 됐는데 돌아보면 굉장히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국가도, 인종도, 언어도 다르지만 젊은 세대끼리 교감하고 통하는 것이 많다"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난 친구들과 오랫동안 소통하면서 한·러 관계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선특급 원정대는 오는 27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한민족학교인 '1086한민족학교' 졸업생들과 재차 한·러 청년 대화를 가질 예정이다.
노보시비르스크=김화영 기자 hongd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