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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가 지난 15일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거처하던 고택을 찾았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을씨년스럽다. 김화영 기자 |
# 초라한 항일운동 유적지
-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 유허비
- 쓸쓸한 모습에 열사의 후손 한탄
- 안중근 의사 기념비 한때 철거
- 安 단지기념비는 놀이터 전락
- 최재형 선생 고택도 적막강산
# 남한에 대한 커지는 이질감
- 송편·떡국 등 풍습 근근히 지켜
- 모국어 가능 대다수 북한말 사용
- K-팝·영화 관심은 일회성
- 같은 민족인데도 외국인 취급
- 한국어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유해나마 고향으로 돌아오셨다면 성묘라도 드렸을 텐데…. 술도 한잔 준비 못해 너무나 죄송합니다."
지난 15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의 수이푼 강가.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 선 조근송(60) 씨가 울먹였다. 조 씨는 1907년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이상설·이위준 선생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이다.
무성한 수풀에 둘러싸인 유허비를 바라보던 조 씨는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돼 순국선열들 뵐 낯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1917년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이상설 선생은 "광복을 못 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랴"고 한탄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골은 수이푼 강에 뿌려졌다.
■외로운 연해주 독립열사의 넋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까지 대장정에 오른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가 러시아 내 독립군 유적을 찾았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20㎞ 떨어진 우수리스크는 고려인 2만여 명이 사는 도시이다. 고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48)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은 "독립운동 유적지가 너무 쓸쓸하다. 남북이 분단돼 이곳에 좀 더 자주 올 수 없어 더욱 아쉽다"고 말했다.
유허비에서 2㎞ 떨어진 고려인문화센터 옆 안중근 의사 기념비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2년 한국보건신학연구원이 블라디보스토크 의과대학에 세운 기념비는 2012년 갑자기 철거됐다가 최근 이곳으로 옮겨졌다. 현지 가이드는 "러시아 정부는 소수민족이 단결하는 것을 싫어한다. 기념비 철거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았겠느냐"라면서 "연해주 연추에 있는 안 의사의 단지기념비(손가락 절단을 기념하는 비석)도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안 의사 기념비에 적힌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는 글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안 의사 기념비에서 10분 거리인 최재형 선생 고택도 을씨년스러웠다.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인 최 선생을 기리는 유품은 전혀 없었다. 최 선생은 이상설·홍범도·안중근 의사와 함께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독립운동가. 한인자치회관과 민족학교 설립도 주도했다. 최 선생이 이끄는 의병부대는 1908년 7월 두만강 연안에 주둔 중인 일본군을 공격해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전공을 올렸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 시도 전 최 선생의 집에서 모의 훈련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안 의사의 6촌 손녀 안현민(22·경북대 성악과) 씨는 "최 선생님은 할아버지와 같이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일본군에 살해당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다행히 연해주 민족문화자치회 김 니콜라이 페트로비치(60) 회장이 최재형 고택을 매입해 독립기념관으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한국어를 잊은 고려인
연해주는 한민족 해외 개척사의 시발점이다. 1914년 형성된 신한촌은 세계 1호 코리아타운. 그러나 많은 고려인 후손이 '민족혼'을 잊고 있었다. 이들에게 한국어는 '잃어버린 언어'이다. 니콜라이 회장 역시 간단한 인사말 정도만 한국어로 가능하다. 그는 통역을 통해 "고려인 후손 가운데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소수이다. 한국 문화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남한에 대한 고려인들의 이질감은 특히 크다. 니콜라이 회장은 "오랫동안 '소련'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북한 소식을 더 많이 듣고 컸다. 그래도 오래된 풍습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추석 때는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고 떡국을 나눠 먹는다"고 소개했다.
고려인문화센터에서 만난 림엘자(여·63) 씨도 마찬가지였다. 유라시아 원정대의 아리랑 공연을 본 그는 연신 "한국 정말 좋아요. 자랑스러워요"라고 반가워했다. 고려인 2세라는 그에게 아버지의 고향을 물었더니 "금정동? 청추?"라고 반문했다. 다시 "부산이냐, 충북 청주냐"고 되물었더니 "아니다. 아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역시 한국어가 서툴렀다. 그는 취재진의 손을 꼭 잡으며 "한국 좋아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국교육원 이진영 원장은 "K-팝이나 한국 영화에 대한 고려인의 관심은 일회성이다. 남한이 고려인들의 한국어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교육원의 수강생은 500여 명. 이 중 고려인은 30% 정도. 나머지는 러시아인이다. 이 원장은 "한국어를 쓰는 고려인 대다수가 북한말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이준 열사의 후손 조근송 씨는 "독립운동가 후손뿐 아니라 고려인 같은 동포는 늘 차별받으며 살았다. 같은 민족인데도 외국인 취급을 당하고 있다. 거지한테 동냥을 하듯 도울 게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진심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 '사할린 한인기념관' 부산 시민단체가 총대멘 이유는
- 동포 지원 2개 법안 국회 계류
- 강제 징용자 상당수 PK 출신
- 지난달 부산서 첫 모금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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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로 참가한 안중근 의사의 6촌 손녀 안현민(22) 씨가 지난 15일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앞에 세워진 안 의사 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한국보건신학연구원이 2002년 블라디보스토크 의과대학 앞에 세운 이 기념비는 2012년 갑자기 철거됐다가 최근 이곳에 다시 세워졌다. 연합뉴스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인 사할린도 우리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도시다. 연해주 고려인 상당수가 일제 탄압을 피해 고국을 떠났다면 사할린 동포 1세대들은 강제징용으로 머나먼 이국땅까지 끌려왔다.
1945년 소련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당시 사할린 조선 징용자는 4만5000여 명에 달했다. 지금도 고려인 2~5세 4만3000여 명이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다.
(사)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리인수 사무총장은 "일제는 부산항에서 강제 징용자를 배에 태워 사할린으로 끌고 갔다. 강제 징용자 상당수가 부산·경남 출신인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안타깝게 희생된 1세대들의 넋을 기리는 한편 후손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사할린 한인 역사기념관'을 설립하려 한다. 지난달 11일 부산 부산진구 삼광사에서 첫 모금 후원회가 열렸다"고 전했다. 역사 기념관 사업비는 총 300억 원. 민간 모금으로 10%인 30억 원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정부 보조금을 끌어낼 계획이다.
시민사회가 역사 기념관 건립에 총대를 멘 것은 사할린 동포 지원법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 19대 국회에는 사할린 동포 지원을 위한 2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2013년 대표 발의한 법안은 사할린 동포를 위한 복합센터를 짓고 역사 자료를 수집·관리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이 2012년 발의한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영주 귀국을 희망하는 사할린 동포는 직계비속 1인 동반 가능 ▷한국 정착을 위해 한국어 교육과 직업훈련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영주귀국 대상은 1세대(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로만 한정됐다.
리 총장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힘이 약해 강제로 끌려간 재외동포와 후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국가의 의무이다. 당장 한국어도 힘겨워하는 후손들이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김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