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사 손길 부족 가족이 메워
- 지인 입원하면 '情 때문에 문병'
-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도마 위

- 환자 경유 미신고·무단이탈 등
- 미성숙한 태도·이기심도 한몫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 바탕에는 '대한민국형 병원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보호자가 없으면 화장실은커녕 다 먹은 밥그릇 내놓기도 힘들다. 지인이 입원했다고 하면 시간과 횟수와 관계없이 병문안을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병원 혹은 의사에 대한 불신으로 한 가지 질병에도 여러 병원을 쇼핑하듯 다닌다. 긴급한 상황일 때 가는 응급실에 '입원'도 하는 것이 우리나라 병원의 현실이다.

■대한민국형 병원 문화 피해 확산

부산의 첫 번째(81번) 메르스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응급실에 실려 온 친척을 병간호하기 위해서였다. 친척이 입원해 있던 이틀 동안 81번 환자 가족 여러 명이 병원을 찾았다. 결국 일가족 5명은 메르스에 걸리는 비극이 벌어졌다. 병간호 혹은 병문안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감염된 사례는 이 가족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29일까지 확인된 메르스 확진자 182명 중 환자 가족이나 가족 이외의 문병, 방문객이 64명으로 35.2%나 차지한다. 이는 의료진 등 병원 종사자(36명·19.7%)의 배에 육박한다.

이처럼 가족이나 방문객이 감염된 사례가 많은 것은 가족 없이는 간호가 안되는 한국형 병원 간호 시스템 때문이다. 국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병원 사정에 따라 최대 50명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간호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보호자들이 메우게 됐고, 6인실 병실에 12명이 생활하는 현재의 병원 문화가 고착화됐다.

'병원 쇼핑' 문화도 메르스 확산에 한몫했다. 부산의 두 번째(143번) 메르스 환자는 지난 8일 입원하기까지 네 곳의 병원을 거쳐 갔다. 처음에는 밤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병세로 응급실을 찾았고, 다음 날에는 동네 내과도 찾았다. 그래도 안되니 다른 종합병원 2곳의 응급실을 더 방문했다. 단일 증상으로 여러 병원에 다니는 것이 비단 이 환자만은 아니다. "큰 병일수록 병원 세 곳은 가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병원 쇼핑은 일상화됐다.

'빅5'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도마에 올랐다. 여러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몰리고, 입원을 기다리며 며칠씩 체류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은 메르스 '숙주' 역할을 했다. 실제로 2013년 새누리당 신의진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빅5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 수준은 14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만 아는 이기주의, 이웃에 피해

격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로 확진 받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이들이 격리 대상자에서 누락된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가장 큰 원인은 보건당국의 방역 허점이지만 일부에서는 환자 본인이 확진자 경유 병원에 다녀갔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143번 환자도 자신이 대전 대청병원에서 2주간 일했는데도 입원한 뒤 나흘이 지날 때 까지 이 사실을 병원에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첫 확진자인 152번 환자(52) 역시 삼성서울병원의 명단이 공개된 후에도 근무하고, 목욕탕을 다녀오는 등 일상생활을 해 비난을 받았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자가 격리자들이 갑갑하다는 등의 이유로 거주지를 무단으로 이탈하고, 심지어 다른 시·도로 골프까지 치러가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해 낮은 시민 의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부산대 신현정(심리학과) 교수는 "순간적으로는 남들에게 따돌림 당하거나 격리당할지도 모든다는 두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병원을 다녀온 사실을 속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