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윤상직(오른쪽) 장관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고리 원전 1호기의 가동 중단 여부 결정을 위해 열린 제12차 에너지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 정부 "앞으로 폐쇄 더는 없다"
- 원자력 비중 더 늘릴 계획
- 시민사회는 "탈핵 계기 삼자"

- 2050년 해체시장 규모 1000조
- 지역 신성장 동력 육성 가능
- 해체 과정 모든 정보 공개해야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영구 가동정지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도 중대한 전환점이다. 당장 반핵단체들은 "정부는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중단하고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폭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월성1호기도 폐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고리1호기만 폐로'로 한정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국회에 보고한 제7차 전력수급계획 역시 원자력 비중을 22%에서 29%로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성장산업으로 평가받는 원전 해체 기술 육성은 당면한 과제다. 우리나라의 원전 해체기술은 선진국 대비 70% 수준이다.

■고리1호기를 테스트베드로

산자부 정양호 에너지자원실장은 12일 "고리1호기 해체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지금부터 핵심 해체기술 개발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 핵심 해체기술 38개 중 국산화가 안 된 21개를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정 실장은 또 고리1호기 가동 정지가 미칠 영향에 대해 "정부의 에너지위원회 위원들도 영구정지 결정이 고리1호기에 국한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핵부산시민대책위는 "정부가 고리1호기 폐로를 발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핵발전소 13기 추가 건설을 추진 중이다. 심지어 신고리7·8호기의 입지를 영덕으로 변경해 한반도 전체를 핵부지화하려 한다"며 "고리1호기 폐쇄는 탈핵을 위한 시작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환경단체는 고리1호기가 폐로의 테스트베드가 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국내에는 현재 고리1호기를 포함해 23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며, 2029년 36기까지 확대하는 전력 수급계획이 최근 마련됐다. 고리1호기에 이어 고리2호기는 2023년에 설계수명이 끝나고 고리3호기는 2024년, 고리4호기와 전남 영광의 한빛1호기는 2025년에 수명이 종료된다.

세계적으로도 2013년 현재 가동하고 있는 원전은 438기에 달한다. 영구정지된 149기 중 19기는 해체가 끝났고 130기는 해체 중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해체시장 규모가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 방사성 폐기물관리 전담기구(NDA)의 마크 웨어링 매니저는 "일찍 시작할수록 더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체득할 수 있는 만큼 한국도 서둘러 폐로 산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민과의 소통이 중요

전문가들은 폐로 과정에서 지역주민과의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제2회 기장포럼'에 참석한 미국 글로벌전략경영원 제임스 안 부장은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스템이다. 폐로 전 과정을 지역주민과 대중에게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해체 보고서(PSDAR)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제출하고 공청회도 자주 연다. 기밀 정보를 뺀 NRC의 모든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지역사회는 폐로 계획에 대한 의견 제출과 회의 개최를 요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콜로라도 주는 포트세인트베런 원전을 폐로하기에 앞서 6개월마다 질문지를 주민에게 배포하고 브리핑을 하는 '종합소통계획'을 세웠다. 위스콘신 주(키와니 원전)와 메인 주(양키 원전)도 '시민자문위원회'를 꾸려 대중이 폐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리버사이드시티는 산 오노프리 원전을 폐쇄하면서 대중의 참여와 교육을 독려하기 위한 자발적인 기구인 지역참여패널(CEP)을 설립했다.

일본 오마에자키시는 2011년 5월부터 원전 1·2호기에 대한 폐로가 진행 중이다. 나머지 3기도 원전 안전 개선 조치 탓에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1·2호기는 현재 막 1단계 해체 과정이 끝난 상태다. 1976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 원전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갑자기 폐로가 결정됐다. 일본 국민의 운전 중단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일본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오명을 쓰면서 집값이 내려가고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자 오마에자키시는 폐로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디딤돌로 삼는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