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마산병원 의료진이 환자로부터 채취한 결핵균을 현미경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 부산시-질병관리본부 수습 엉망
- 관련 정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 검사 때마다 다른 결과 나오기도
- 부모들 자비로 추가검사 등 분통

- 집단감염 매년 2~4회꼴 발생
- 의료 종사자 감염검진 강화를

지난해 7월 부산의 A병원 신생아실에 근무하던 간호조무사가 결핵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부산시는 간호조무사의 결핵 감염이 확인된 시점부터 3개월 전에 태어난 아기 320명을 대상으로 1차 결핵 검사를 했다. 이 중 40%가 넘는 132명이 피부반응검사(투베르쿨린·TST)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TST 양성 반응이란 현재 결핵이 발병하지는 않았으나 균은 가지고 있는 잠복결핵 감염 상태를 말한다. 의사 결핵환자로 분류된 신생아 한 명은 집중 치료를 받았다. 보건당국은 신생아 잠복 감염이 간호조무사와 연관돼 있는지 조사 중이다.

■"제발 제대로 된 정보라도…."

잠복 결핵 신생아들은 이달까지 9개월 동안 약과 씨름하고 있다. 부모들은 병원을 상대로 피해 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원고 명단에 이름을 올린 아이는 모두 63명. 부모들은 보건당국을 상대로 추가 소송도 검토 중이다. 부산시·질병관리본부가 사건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엇박자' 탓에 분통 터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

"결핵균 감염이 아니라 결핵예방접종(BCG)을 맞아도 양성 반응이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양성 반응이 나온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갓난아이에게 독한 약을 먹여야 했습니다." 아이가 잠복결핵 판정을 받은 이모(32) 씨의 하소연이다. 다른 신생아 부모도 "BCG에 따른 위양성(검사 결과가 잘못돼 양성으로 나온 경우)을 걸러내기 위해 피부반응검사를 두 번 받았다. 일부 아이는 검사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와 부모들이 자비를 들여 추가 검사를 했다"고 말했다. 현재 엄마들 200여 명이 밴드에서 활동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또 다른 부모는 "사건 초기 질병관리본부에서 '결핵은 흔한 질병이니 약을 먹으면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우리가 논문을 샅샅이 찾아봤더니 신생아가 대규모로 결핵약을 먹는 일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김모(여·34) 씨는 "어린 아이에게 9개월이나 약을 먹여야 하는데 투약 전 피 검사나 소변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조차 하지 않아 부모들이 항의도 했다"고 전했다.

■혼란 부추긴 2차 검사

결핵 집단 감염 사태가 잠잠해질 즈음인 지난 1월. 더 큰 사건이 터졌다. 2013년 10월 A병원에서 태어난 아이가 간호조무사와 같은 결핵균에 감염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 질병관리본부와 부산시는 2013년 1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이 병원에서 출생한 신생아 1500여 명을 대상으로 2차 결핵 검사를 하라고 부모들에게 '권고'했다. 지난 2월까지 피부반응검사를 받은 아기 734명 중 19%인 139명이 양성반응을 보였다.

부산시의회 정명희 의원은 "1년에 한 차례 시행하는 의료진 건강검진을 두 차례로 늘려야 한다. 간호조무사에 대한 검진 기간이 짧았다면,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사들은 현재 약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어린이보험 가입도 거부하고 있다. 잠복 결핵은 완치가 불가능해 약을 다 먹고 난 이후에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결핵전문인 국립마산병원 황수희 흉부내과장은 "잠복결핵은 결핵균 활성화가 억제된 상태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9개월간 투약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균이 사라졌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장철훈 교수는 "중·고교에서도 결핵 집단 발병 사례가 자주 생기지만 부산시는 역학조사나 사후 대책을 수립할 때 중앙 정부만 바라본다"고 비판했다.

결핵 집단감염은 매년 부산에서 2~4차례 발생한다. 지난해 5월에는 부산대 A 학과 재학생 14명이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같은 학과 재학생 60여 명은 '잠복 결핵 감염자'로 판명났다. 앞서 질병관리본부는 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결핵 환자 1명이 확인되자 A 학과 재학생과 교직원들을 상대로 역학조사를 벌였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내에 결핵이 퍼지고 있다"는 '괴담'이 떠돌았다.

결핵 집단감염이 확인되자 "부산대와 질병관리본부가 전염성 질환에 대한 피해 사실과 치료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 아픈 고통보다 '전염병 환자' 사회적 낙인이 더 괴롭다

- 2주 치료 후 전염성 소멸 불구 대부분 함께 밥먹는 것도 꺼려
- 주위 편견에 일부 치료 중단도

결핵 발병에 따른 증상보다 결핵환자를 더 괴롭히는 것은 전염병 환자라는 '낙인'이다.

질병관리본부가 2013년 성인 1000명을 상대로 '결핵 인식·태도·지식·행동 및 미디어 캠페인 효과 조사'를 했더니 결핵에 대한 '사회의 낙인(Social stigma)' 수준이 5점 만점에 3.8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5점에 가까울수록 높은 낙인 수준을 나타낸다. '내가 결핵에 걸린 경우의 낙인'(3.8점)과 '결핵에 대한 나의 낙인'(3.7점)도 모두 3점 후반대였다. 응답자들은 또 '대부분의 사람은 결핵환자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거나 '내가 결핵에 걸렸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와 내 아이가 노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항에 대해 4점이라는 높은 낙인 수준을 보였다.

질병관리본부가 200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결핵예방 홍보 캠페인을 경험한 사람도 낙인효과는 여전했다. 결핵예방 홍보 캠페인을 접한 300명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했더니 '내가 결핵에 걸린 경우의 낙인'과 '결핵에 대한 나의 낙인'은 3.7점이었다. '사회의 낙인'은 3.8점으로 일반 응답자의 낙인수준과 비슷했다.

질병관리본부 고윤영 에이즈·결핵관리과장은 "결핵은 2주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전염성이 없어지는 만큼 결핵 환자에 대한 불필요한 편견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결핵균에 감염돼도 10% 정도만 결핵이 발병하며 나머지 90%는 감염은 됐지만 발병은 하지 않은 '잠복결핵 감염' 상태에 놓인다.

전문가들은 "결핵에 대한 사회적 낙인효과를 넘어서 낙인을 야기하는 원인과 낙인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생의학적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높은 치료 중단율에 주목해야 한다. 건강 보험자료를 분석한 논문 등에 따르면 전체 결핵 환자 중 7.3%가 치료를 중단하고 있다. 누가, 왜, 어떠한 상황에서 치료를 중단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