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를 닷새 앞둔 11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노을이 지고 있다. '기다림의 등대'로 불리는 빨간 등대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홍영현 기자

남도의 하얀 봄꽃들이 피었다 속절없이 지고 있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시인의 말이 차라리 잔인하게 들려오는 그런 4월이다. 배 빠진 맹골수도의 바람은 여전히 차다. 바람은 파도를 몰아오는데 아이들은 대답이 없다.

지난 11일 오후, 세월호 참사 1년을 앞둔 전남 진도 팽목항에는 비릿한 갯내음 속에 진한 쓸쓸함이 감돌았다. 입구부터 방파제로 가는 길에는 빛바랜 노란색 리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어디선가 번져오는 봄꽃 향기는 해지고 거뭇거뭇해진 리본 속으로 스며들었다.

세월이 흘렀음인가. 1년 새 팽목항을 찾는 발걸음은 눈에 띄게 줄었다. 차 댈 곳이 없었던 공영주차장은 텅 비었고, 희생자 시신이 들어와 유족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방파제에는 몇몇 낚시꾼이 서성댔다. 실종자 가족들이 돌아오리라는 실낱 희망을 갖고 머물던 진도체육관은 체육대회 준비로 분주했다. 모든 게 평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간절한 추모와 진정성 있는 사후대책을 바라며 팽목항을 찾아온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한 젊은 주부는 노란 리본 모양의 조형물 앞에 '우리 둘째 백일 떡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이 커질수록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가늠할 수 없어집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날 부산에서 온 추모객도 만날 수 있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가정 현장학습'을 왔다는 명성진(41·부산 부산진구) 씨는 "팽목항에 오기 전 아이들에게 참사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줬는데, 도착하기 10㎞ 전부터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부산 동평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준혁(8) 군은 "형과 누나들 이야기가 슬프다. 과자라도 사서 바다에 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준혁 군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준혁 군의 어머니 박윤주(41) 씨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고 해결된 것도 없다"며 등대 앞에 설치된 하늘나라 우체통에 '하늘나라에서는 잘사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은 권오복(61) 씨가 유일하다. 권 씨는 "정부는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인양을 공식 발표해야 한다"면서 "침몰한 배 안에 동생과 조카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1주기. 한국사회는 전대미문의 대참사를 겪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구성된 세월호 진상조사특위는 출범조차 못 했고, 정부가 입안한 시행령은 적당히 넘어가는 수순으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얼마 전 유족들은 다시 상복을 꺼내 입고 영정을 들었다. 삭발식도 있었다. 지난 11일 광화문 추모집회에선 최루액이 뿌려지는 등 경찰과 유족·시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세월호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적폐를 거론하며 '국가개조' '안전 한국'을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일인 16일 해외순방을 간다고 한다. 다시 4월이 왔으나 한국사회는 세월호 탈상(脫喪)은 커녕 혼란의 소용돌이에 계속 휘말리는 모습이다. 팽목항 등대에 나붙은 '국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창희 대기자·진도 팽목항=김영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