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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교통공사 전동차가 지난달 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아 투신사고가 우려되는 도시철도 1호선의 한 역에 진입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
- 수능성적 비관 학생 뛰어들때
- 제동장치 급하게 밀었지만
- 만신창이된 시신 수습이 고작
- 일상중 호흡곤란 증세 겪고
- 모르는 사람이 꿈에 나타나
- "아이를 살려내라" 울부짖기도
- '정신보건 프로그램' 있지만
- 사고 경험자 대상 추적검사
- 한번도 시행안되는 등 형식적
"비켜줘, 비켜줘. 제발!" 간절히 빌었지만 너무 늦었다고 직감했다. 2011년 11월 24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동원역으로 진입할 때였다. 승강장 기둥 뒤에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선로로 뛰어들었다. 기관사 A(44) 씨는 마스콘(제동장치)을 급하게 밀었으나 전동차의 속력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2, 3초쯤 흘렀을까. 고개를 들자마자 유리창에서 "퍽"하고 충돌음이 났다. 찰나였지만, 전동차에 부딪히는 순간 자신을 바라보던 투신자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지만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어깨뼈가 몸 밖으로 돌출되고 얼굴의 반가량이 터져나갔는데 그 아이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너무 가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특목고 우등생이었고, 수능성적을 비관해 투신했다는 걸 안 뒤 죄책감은 더 깊어졌다.
■사고위험 일상화, 정신진료는 형식적
A 씨는 이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전동차는 물론 자가용 승용차를 운전할 때도 어디서 뭔가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심각한 호흡곤란 증상도 이 사건 뒤 생겼다. 아무런 이유 없이 20분 넘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하는 증상이 반복됐다. 꿈에 자주 그 상황이 재연됐다. 그 학생이 살아나 말을 걸고,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살려내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의 치유 손길은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그런 세월 속에 그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만성화하고 있다.
한 번도 고통스러운 투신사고를 네 번이나 겪은 기관사도 있다. B(45) 씨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된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사고 때마다 회사와 진료협약을 맺은 대학병원의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하긴 했다. 그러나 의사가 "괜찮으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는 것으로 진료는 끝이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회사에 못 다닐 것 같았다. 먹고 살려면 대충 넘어가는 게 좋다"고 토로했다. 사고가 거듭될수록 그의 대인기피증은 심해졌고, 훼손된 시신이 툭하면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B 씨는 자신만 믿고 사는 가족을 생각하며 참고 견뎌야 했다.
'슬픈 회식'은 기관사들의 관행이 됐다. 투신사고가 나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신다. 사고 경험자는 대취하도록 술을 마신다. 기관사 C(49) 씨는 "어차피 집에 가봐야 잠을 못 이룰 테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먹여 사고 기억을 못하도록 하는 게 동료에 대한 우리의 배려"라고 말했다. 투신사고는 매년 10~11차례 발생했다. 부산교통공사에 따르면 2008년 10건, 2009년 11건, 2010년 10건, 2011년에서 2013년까지 매년 11건 일어났다. 투신사고를 겪은 기관사는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부산교통공사 노사는 '정신보건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2006년 합의했다. 하지만 실행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교통공사는 '사고 발생 즉시 대체 기관사 현장 투입'에 대해 합의한 뒤 1호선과 2호선에 각각 2명, 3호선 1명 등 총 5명의 대체인력을 준비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관사들은 회의적이다. 한 기관사는 "곧바로 현장까지 오는 기동성이 떨어져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사고 경험자가 업무에 복귀한 뒤에도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추적검사를 벌이기로 했지만 여태껏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
■경험자 추적검사 합의…실적은 제로
기관사만 트라우마에 노출된 게 아니다. 전기 등 사고 위험이 뒤따르는 직군에서도 심각한 트라우마 환자를 볼 수 있다. "수면제 신경안정제 자살방지약 등 정신치료약을 매일 15정을 먹고 자리에 눕지만, 수리작업 중 감전돼 숨진 동료가 위에서 검게 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럴 땐 정말 미칠 것 같아요." D(45) 씨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두 번 입원했다.
선로 전기설비 점검·수리업무를 맡은 그는 2010년 6월 9일 새벽에 발생한 사고 기억에 지금까지 얽매여 산다. 당시 그는 캠스위치(전기전환기) 교체하던 중 차단기가 폭발하면서 고압전류에 감전된 동료가 눈앞에서 불에 타 죽는 것을 목격했다. "혀를 쭉 내민 채 동공이 풀린 동료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D 씨는 산재 판정을 받았지만 휴직하지 않고 업무 복귀를 택했다. 빨리 회복하려면 일을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는 게 좋다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갈수록 악화돼 갔다. "사고 전만 해도 꿈이 많았는데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의 말끝이 울음 속에 잦아들었다.
# "사람 잡는 1인 승무제 폐지해야"
- "사고때 효율적 대처도 불가능"
- 부산도시철도 노조 '2인제' 역설
- 사측 "인건비 감당 못한다" 난색
부산도시철도의 전동차 운행은 기관사 한 명이 맡고 있다. 모든 비상상황에 혼자 대처하는 '1인 승무제'(이하 1인제)다. 1인제 하에서 사고를 겪은 기관사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두려움 가득한 심정으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사고를 겪지 않은 기관사도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 사고를 의식하며 고도의 긴장상태에서 운전한다. 이 때문에 기관사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 소지를 줄이려면 사고 시 피해를 키울 수밖에 없는 1인제를 '2인 승무제'(이하 2인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교통공사의 사고 초동조치 매뉴얼에 따르면 사고 발생 때 기관사는 상황 전파와 안내방송, 승객 대피 등 모든 조치를 5분의 '골든타임' 내에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7월 17일, 1호선 시청역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수습과정에서 그런 실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양정역에서 시청역으로 운행하던 전동차의 기관사는 오후 5시40분께 전원공급장치 이상을 감지하고 시청역 30m 앞 지점에서 급제동을 걸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관사는 불이 난 사실조차 몰랐다. 오후 5시45분께 승객으로부터 화재 신고를 접수하고 나서야 대피 안내방송을 했다. 이어 객실로 이동하면서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이미 5분을 넘겼다. 화재 현장에 도착해 불을 끄고 초동조치를 마친 것은 사고 발생 후 8분이 지난 오후 5시48분께였다.
"객차에서 불이 나더라도 맨 앞칸에 있는 기관사는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장 표시 계기판은 화재만 따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죠. 사고 매뉴얼이 있지만 혼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요. 허둥지둥하다 보면 피해가 커지기 십상이죠. 1인제 하에선 트라우마를 직업병으로 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서흥수 승무지부장은 2인제 전환 필요성을 이같이 역설했다.
하지만 부산교통공사 최정석 안전관리실장은 "복잡한 초동조치를 5분 내에 혼자 하는 게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도 "2인제 때는 인건비 투입이 배로 늘어나 경영 여건상 감당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