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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대자보' 그후…말문 막힌 아이들

"너희들이 뭘 알아" 정치·사회문제 침묵 강요…안녕 못한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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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회의실에서 부산 지역 중·고교생들이 학교 안에서 겪은 표현의 자유 억압 사례를 얘기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 자기 생각 적은 중·고교생 대자보
- 악의적·허위사실 적은 것 아닌데도
- 학교측 일방적 중립 요구·게재 금지
- 학내 문제라도 민감한 사안엔 제동

- 일부 학교 대자보 학생 경위서 요구
- 1960년대 제정된 교칙 아직도 적용
- 학생인권조례 없는 부울경 더 심각

"그저 내 생각을 적은 글인데, 학교는 '삐라'라고 했어요." 지난 6일 오후, 부산시 연제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학교생활 중 의사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다는 학생들의 성토장이 펼쳐졌다. 지난달부터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안녕들 하십니까'(이하 안녕들) 대자보와 관련한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올곧은 말하다 된서리 맞는다"

'안녕들'에 대한 기억을 묻자 부산 A 고교에 다니는 김모(19) 양의 낯빛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김 양은 왜 일기 같은 글까지 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아직 이해가 안 된다. 김 양은 지난달 23일 등교하며 결심했다. 전국을 휩쓴 '안녕들'에 가슴이 뜨거워져 자신도 대자보를 쓰기로. 이미 학교 입구에 대자보 두 장이 붙어있어 힘이 났다. '고등학생도 무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제의 글을 A4 용지에 빼곡히 적어 20장을 복사했다. 오전 3교시 때부터 친구와 함께 교실, 화장실 등 학교 곳곳에 붙였다.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 대자보가 모두 뜯겨나갔다. 오후 6교시 수업 중간에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런 '삐라' 같은 글 두 번 다시 붙이지 마라"고 말하는 교사의 목소리에는 화가 잔뜩 묻어 있었다. 김 양은 크게 상심했다. 김 양은 그날 이후 신념이 흔들렸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또 이런 일을 벌이면 선도위원회를 열어 처벌한댔어요. 대학 가는데 불이익이 있을지 모르니 이젠 못하겠죠." 김 양은 고개를 떨궜다.

부산 B 여중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박모(16) 양은 지난달 중순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자기가 쓴 글을 내밀며 학교에 붙이면 안 되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학생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준다고 정평 난 교장이 편하고 좋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읽어봤느냐. 뭘 제대로 알고 써야지." 교장이 남긴 한 마디는 박 양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학생기자로 활동 중인 부산 C 여고 이모(19) 양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교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듣는 교과교실제가 학업 성취를 높이는 데 효과가 없다는 기사를 냈다가 교장실에 불려갔다. 기사를 쓸 때 허락을 받거나 이런 글은 아예 적지 말라고 혼이 났다. 기자가 꿈인 이 양은 "나쁜 것을 감추고 좋은 점만 부각하는 것이 기자의 임무냐"며 억울해했다.

■인권조례 제정 안된 부울경 표현자유 취약

지난달 '안녕들' 대자보가 전국을 휩쓸고 간 뒤 새해를 맞았지만 중·고교생들의 마음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나라의 미래 주인공으로서 사회적 일역을 담당하겠다는 충정에서 나름의 올곧은 생각을 대자보로 표출했지만 학교는 교육당국이 허용하는 사안이 아니면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이란 씁쓸한 현실만 확인했기 때문이다.

부산·경남·울산 지역 학생들의 실망감은 더 크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아 의사 표현의 자유 보장이 다른 지역에 비해 취약한 탓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성한철 정책실장은 "인권조례가 제정된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부울경 지역에서 '안녕들' 대자보 부착이 적었던 것은 인권조례 제정을 통해 의사 표현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혜경 부산시교육감은 "현재 학생 자율적으로 이뤄진 의사 표현은 보장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본지 취재팀이 확인한 학교 현실은 딴판이었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발언은 철저히 차단되고 있었고, 학내 문제라도 민감한 사안은 발언권이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지역 교육당국은 이런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교육당국은 현행 교육법에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따라 학생 인권을 보장하도록 규정돼 있어 별도의 인권조례 제정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학교 현실에서 이런 법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상위법규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학교 현장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학생 인권을 보장하기 어렵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에서 제정 요구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법규에도 없는 정치적 중립 의무 강요

특히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법규에도 없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요해 물의를 빚고 있다. 경남 D여고 정모(18) 양은 지난달 중순 뜻 맞는 친구와 함께 학교 담벼락에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하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가 곤욕을 치렀다. 교장은 "학생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다. 누가 이런 것을 너한테 시켰느냐. 너 때문에 학교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며 김 양을 윽박질렀다. 두려움에 떨던 김 양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경위서를 쓰고서야 겨우 놓여났다.

하지만 학생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법규는 없다. 교육기본법 등에 따르면 정치적 중립 의무는 교직원에게만 있을 뿐 학생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학생의 인권은 존중되고 보호돼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따름이다(교육기본법 제12조). 교육 관련법 조항을 모조리 뒤지고 전문가에게 문의한 끝에 이런 사실을 확인한 정 양은 사제간 신뢰에 금이 갔다는 배신감에 눈물을 쏟았다.

오히려 학교는 학생 생활규정과 지도규정 등으로 학생을 옭아맨다. 대다수 학교의 규정에 '불량 목적으로 학생을 선동해 질서를 문란시키거나 집단행동을 주동한 자'는 처벌받는다는 내용이 있다. 최고 수준의 벌점인 30점이나 퇴학 처분까지 받게 돼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1960년대 제정된 이런 규정들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독소조항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라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서둘러 학생에게도 마음껏 표현할 권리를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광역시·도 중 학생인권조례 제정 4곳에 불과
최근 전라북도 교육청은 전주 상산고의 학생인권조례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상산고 측이 역사적 사실 왜곡 지적을 받은 교학사 국사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학생과 학부모, 동문 등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막았다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전북학생인권조례 제16조에는 '학교장은 학생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 부당하고 자의적인 간섭이나 제한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도 교육청은 지난해 8월 이 조항이 포함된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전북과 경기도(2010년 10월), 광주(2011년 11월), 서울(2012년 1월) 등 4곳뿐이다. 이들 지역의 인권조례에는 의사 표현의 자유 및 사상의 자유 보장 등이 필수 조항으로 들어가 있다.

부산은 2010년 교육감 선거 때 진보 진영의 박영관 후보(현 민주공원 관장)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낙선한 뒤 제정 활동이 끊긴 상태다. 경남은 2012년 주민 발의로 인권조례 제정이 시도됐으나 그해 5월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부결됐으며, 울산은 아직 추진된 적이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인권조례 제정으로 의사 표현 자유 등 전반적인 학생 인권이 크게 신장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영선 전교조 학생인권국장은 "전국적으로 서울과 경기도의 중·고교에 '안녕 대자보'가 가장 많이 나붙었는데, 이 때문에 징계를 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며 이를 학생 인권 신장의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부산시교육청 김수동 학교폭력과장은 "상급기관의 하달사항이나 국가인권위의 권고사항만 일선 학교에 시달할 뿐"이라며 "학생인권조례 제정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부산교육감 출마 예정자 입장

- 보수·진보 성향따라 찬반 갈려… 일부 공약 검토

차기 부산시교육감 선거 출마예정자들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입장은 진보·보수 진영별로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출마예정자들은 조례 제정을 공약화할 계획이어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본지 취재팀이 출마 의사를 밝힌 11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에서 이같이 파악됐다. 조사 대상자는 김길용 부산시의회 교육의원, 김상용 전 부산교대 총장, 김석준 부산대 일반사회학과 교수, 김정선 교육의원, 박영관 민주공원 관장, 이일권 교육의원, 임혜경 부산시교육감, 정남식 부산인터넷교육신문 발행인, 정홍섭 전 신라대 총장, 최부야·황상주 교육의원(가나다 순)이다. 이들 외에도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가 더 있지만, 정당 당적 보유 금지 등 규제가 풀리지 않을 경우 출마가 불투명한 인사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설문조사 결과,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해 김 교수와 박 관장, 정 전 총장, 이 의원 등 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인사 4명은 찬성 의사를 밝혔다. 김 교수와 박 관장은 차기 교육감에 출마할 경우 이를 공약화하겠다는 계획도 피력했다. 반면 나머지 보수 진영 인사 7명은 모두 "시기상조"라거나 "현행 법에 보장돼 있다" "조례 제정 시 교권 실추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조례 제정에 반대했다.

부산시교육감 출마예정자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입장

김길용 부산시의회 교육의원

반대

김상용 전 부산교대 총장

반대

김석준 부산대 일반사회학과 교수

찬성

김정선 교육의원

반대

박영관 민주공원 관장

찬성

이일권 교육의원

찬성

임혜경 부산시교육감

반대 

정남식 부산인터넷교육신문 발행인

반대

정홍섭 전 신라대 총장

찬성

최부야 교육의원

반대

황상주 교육의원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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