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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요원들이 12일 새벽 감식을 위해 잿더미로 변한 부산 북구 화명동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 11일 9:15 p.m
- 불 나기 불과 20분 전
- 야근 중인 남편과 통화
- 평온한 안부 인사
# 9:35 p.m
- "불 났어요 살려주세요"
- 엄마가 119에 직접 신고
- 피할 곳 없어 베란다로
# 10:20 p.m
- 40분 만에 겨우 화재 진압
- 아파트 내부 완전히 불타
어린 자녀 3명과 엄마 등 단란한 일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의 현장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부산 북구 화명동 25평의 서민 아파트 705호 내부는 새까만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불길을 등에 지고 자녀를 감싸 안아 지키려 했던 애절한 모정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절박했던 당시 화재 상황을 수사기관과 유족 진술 모습 등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12일 오전 북구 금곡동의 한 장례식장. 유족 10여 명의 눈물은 벌써 모두 말랐다.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죄 없는 이 가족에게 이런 일이 닥친단 말입니까." 숨진 홍모(여·33) 씨의 언니는 절규했다. 또 다른 이는 "소방차만 빨리 왔어도 살았을 것 아니냐"며 늑장 구조를 원망하며 통곡했다.
작업복 차림의 남편 조모(33) 씨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멍한 눈이었다.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영정사진만 바라봤다. 살던 집이 모두 재가 돼 영정에 쓸 사진조차 없었다. 친척이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모아 한 액자에 4명의 얼굴을 담았다. 조 씨는 지난 11일 밤 9시15분께 홍 씨에게 안부 전화를 했고, 이것이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 씨는 당시 오후 6시께 출근해 사하구에 있는 금형공장에서 근무 중이었다. 2주씩 주야 교대로 일하는데 이날은 야간 근무였다.
홍 씨는 조 씨에게 "이제 애들 재우고 나도 자려고"라며 평온하게 말했다. 그로부터 20분 뒤인 밤 9시35분께 남편과 전화 후 잠이 들었던 홍 씨는 매캐한 냄새에 눈을 떴다. 안방 문틈 사이로 연기가 스며들어 문을 열었더니 뜨거운 열기가 훅 몰려왔다. "현관 쪽에 불이 났어요. 살려주세요." 다급해진 홍 씨는 울먹이며 119에 전화를 걸었다. 방문 밖은 온통 화염이었다. 피할 곳이 없었다. 홍 씨는 다급한 나머지 아들(9), 작은딸(1)을 안방 베란다로 데리고 나갔다.
화재는 조기 진압되지 않았다. 소방차의 현장 도착이 늦었다. 불법 주정차한 차들 탓에 소방차의 아파트 진입은 어려웠다. 잠겨있던 현관문을 여는 데 또 시간이 걸렸다. 소방관들이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가 홍 씨를 발견한 것은 신고 접수 후 40여 분이 지난 뒤였다. 벌써 일가족은 숨을 거뒀고, 가구와 가전제품 등도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홍 씨는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등 부위가 시꺼멓게 그을렸다. 홍 씨는 오른팔로 작은딸을, 왼팔로 아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불길이 베란다로 번지자 자녀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큰딸(8)은 작은방에 쓰러져 있었다. 불을 완전히 끈 것은 밤 10시20분께.
화마가 할퀸 현장은 처참했다. 7층에서 15층까지의 건물 외벽이 검게 그을렸다. 매캐한 냄새는 하루가 지나도 빠지지 않았다. 홍 씨 집 방범창 창살이 D자로 휘어 당시 화재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삼삼오오 모인 입주민은 지난밤의 악몽을 되새기며 몸을 떨었다. 한 50대 여성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 참 귀여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