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우리글방' 대표 문옥희 씨.

- 전국 헌책방 돌며 보존 고민
- 출판·책방·행정기관 관계자
- 한자리 모아 토론회 열기도

- 최근 '우리글방 이야기' 집필
- '책방골목 이야기'도 준비 중

부산 중구 보수동 큰길가 책방골목 버스정류장 옆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고 적힌 유리문을 밀치고 '우리글방' 북카페에 들어갔다. 온통 책으로 가득 찬 서가 가운데 차를 마실 공간이 마련돼 있고, 반지하의 책방과 또 다른 출입구인 책방골목의 좁은 책방 등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

간간이 들리는 버스 시동소리조차 정겹게 들리는 북카페에 한국계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저녁의 노래'(한스 에릭 필립 곡 '어부들' 모음곡 중에서)가 은은히 흐르면서 글방을 훈훈히 적신다. 절망보다 슬픈 비올라 선율이 담담하면서 가슴 뭉클하다.

'우리글방' 주인 문옥희(48) 씨를 만났다.

서구 서대신동에 위치한 학교 학생들의 등·하굣길이기도 한 이 좁은 골목에 헌책방이 하나둘씩 들어선 것은 6·25사변을 전후해서이다. 한때는 70여 책방이 이 골목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글방'은 전남 강진이 고향인 노상길(56) 씨가 대우서점(대표 김종훈)의 권고로 옛 일광서점을 인수, 1987년 1월 문을 열었다. 단골로 다니던 대우서점 김 대표의 도움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책을 좋아한 노상길 씨는 형편이 닿는 대로 책을 사 모았다.

헌책방에서 필요한 책을 찾던 문옥희 씨도 대우서점과 '우리글방'에서 이런 노상길 씨를 만나 1991년 결혼했다. 지금은 건강회복을 위해 요양하고 있는 부군을 대신해 '우리글방'을 맡고 있다.

경남 창원시 대산면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문옥희 씨는 진학의 꿈을 펴기 위해 부산으로 와 동남실업 등에 근무한다. 월급날이면 보수동책방골목에 꼭 들러 필요한 책을 구입했다.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 간호보조학원을 수료하고 침례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병실, 특실병동, 외래진료실 근무를 번갈아 하면서도 야간에는 금사동 신발공장 등에서 학비를 벌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졸업 후 부산신학대학 야간부에 진학하지만 재미있는 공부만 하기 위해 3학년 때 주간으로 옮겨 졸업한다. 이 2년 동안 학교만 다니던 시절이 한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단다. 그동안 저축해둔 학비가 있어 일하지 않고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해 수석으로 졸업한다.

27세 때 결혼하고도 대구 계명대까지 매일 기차 타고 통학하며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녀의 공부에 대한 집념은 부산대에서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하고서야 끝을 맺는다. 그리고 4년 전부터 부군을 대신해 책방을 맡았다.

오전 10시면 정확히 글방 문을 열어 일과를 시작한다. 책방 가득히 쌓인 책들도 정리해 찾기 쉽도록 분류하고, 큰길 쪽으로는 북카페를 만들어 보고 싶은 책을 골라 보면서 음악도 감상할 수 있도록 음반도 구입해 비치했다. LP음반이 4000~5000매, CD가 300여 장이나 된다. 문 대표는 출근과 함께 그날의 느낌에 따라 음악을 선정하거나 책방을 찾은 고객의 요청에 응하면서 '우리글방'을 독서분위기로 적셔놓는다.

20대를 위해서는 사진이 많이 삽입되고 표지가 예쁜 책들을 근간서적으로 구입해 놓는다. 가족끼리 읽을 책도 빠뜨리지 않는다. 부모들이 옛날 책에 대한 사랑 경험을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책이면 더욱 좋았다.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을 위해 그들이 찾는 책을 물어 다음 방문 때 지닐 수 있도록 배려도 잊지 않는다. 인문·사회과학·교양을 중심으로 하면서 고서와 예술분야 등 다양한 책들도 비치했다.

올 3월부터 3차례에 걸쳐 전국의 헌책방을 찾아 나섰다. 책방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다른 곳의 형편은 어떠한지 순천·고흥·대전·청주·인천·서울·광주·대구 등지의 헌책방 주인들을 만나보았다. 한결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위기감만 팽배해 보였으며 후계자마저 기약없어 보였다.

대화가 무궁무진한 헌책방 주인들은 순박하기 짝이 없었고 그들의 가슴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70대 현역들도 쟁쟁하여 혁혁한 눈빛을 지니고 있어 문 대표를 감동시켰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북카페에서는 작은 전시회와 음악공연들이 벌써 수차례 열렸다. 지난 7월에는 '보수동책방골목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키워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서울의 출판 언론 문화인 10여 명과 보수동책방골목 경영자들, 부산 문화인들, 그리고 중구청장과 담당과장 등이 이곳에 모여 2시간여 진한 담소를 나눴다.

이들은 '보수동책방골목에 무슨 일이 있을까 궁금해하도록 할 수 없을까'를 놓고 고민했다. 우선 '보수동책방골목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출발해 보기로 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책방골목이 변해야 한다면 어떻게 어떤 모습이라야 좋을지 연구해 보기로 했다. 책방골목 경영자들의 노력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문 대표 등 몇몇의 노력만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문 대표를 비롯한 보수동책방골목 사람들은 한결같이 골목 한 편에 자리한 책방골목 문화관이 보수동책방골목을 위한 문화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여타 문화시설들의 경우를 참고해 초월하기를 바란다. 인물평전, 시집 등의 판본, 귀한 사진첩, 백과사전류, 앨범 그리고 판금도서와 희귀도서를 1년 내내 전시하고 특별전도 기획했으면 좋겠단다. 작가와의 만남도 주선하고 앨범 등에서는 그 학교 출신과 만남의 장소도 만들어 책방골목이 색깔 있고 짙은 향내 나는 따뜻함으로 배어 있기를 소원한다.

최근 '우리글방 이야기' 집필을 끝낸 문 대표는 '보수동책방골목 사람들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한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010-2574-3737 / 부산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