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야기 공작소 <9> 초량왜관을 닮은 日 데지마에 가다

쇄국시대 근대화 문물의 숨구멍…끈질긴 복원으로 유명 관광지화

  • 국제신문
  • 박창희 선임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13-09-16 19:49:02
  •  |  본지 6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일본 에도막부의 쇄국정책 속에 숨구멍처럼 서구를 향해 열려 있었던 나가사키의 데지마 역사유적지. 허리에 칼을 찬 사무라이 복장을 한 직원이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다. 박창희 선임기자
- 나가사키시에 위치
- 포르투갈인을 모아 천주교 포교를 막고
- 관리할 의도로 에도 막부가 건립

- 이후 네덜란드 상인이 이 곳으로 들어와
- 200여년 간 존속

- 작은 공간이지만 일본 근대화 큰 영향
- 외부 문물을 차단한 초량왜관과 큰 차이

- 유명한 관광지이자 역사 교육장으로서
-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기능도
- 초량왜관 복원의 좋은 본보기

초량왜관과 데지마(出島). 조선(부산)과 에도막부(일본 나가사키)의 쇄국령 속 제한적으로 교역이 허용됐던 곳, 근대화의 숨구멍 같은 창구, 의미있는 역사관광 콘텐츠.

초량왜관과 데지마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를 논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존속 시기가 비슷하고 역할과 기능도 닮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달랐던 건 이곳을 보는 중앙정부의 시선이었다. 초량왜관이 가둬두는 데 중점을 뒀다면, 데지마는 근대화의 창구로 활용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일본의 힘의 원천이 여기서 발원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는 지난 6~8일 '데지마에서 찾는 초량왜관 복원과 관광자원화의 방향'이란 주제로 일본 나가사키시의 데지마를 탐방하고 현지 간담회를 가졌다. 이 행사를 동행, 취재했다.

■관광 1번지로 둔갑한 데지마

일본 나가사키시 데지마마치에 자리한 데지마는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허리에 칼을 찬 사무라이 복장을 한 직원들이 나타나 관광객을 안내하거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이곳이 낯설지 않은 것은 데지마의 역할이 조선시대 초량왜관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쇄국시대 열린 교류 마당이란 점에서 두 곳의 역할은 거의 같다.

데지마는 에도막부가 1636년 천주교 포교를 막으려고 시내에 흩어져 있던 포르투갈인을 한곳으로 모아 거주시키기 위해 만든 1만5000㎡ 규모의 인공섬이다. 그러나 1년 뒤 포르투갈인들은 데지마에서 쫓겨나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기독교 전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데지마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그후 네덜란드 상관(商館)이 들어섰고, 20여 명이 상시 거주하는 형태로 200여 년간 존속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는 일본의 유일한 서양 교역국이었고, 데지마는 서구를 향해 열린 일종의 숨구멍이었다.

준지 마미츠카(馬見塚 純治·54) 나가사키시 데지마 복원정비실장은 "데지마는 비록 제한된 교역공간이었지만 일본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2006년 1단계 복원을 끝냈으며, 장기적으로 19세기 인공섬의 원형을 살리는 방향으로 복원을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준지 실장은 CG로 재현된 데지마의 미래 복원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초량왜관과 데지마, '따로 또 같은' 역사

17~19세기 일본의 중앙권력인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에 따라 외국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데지마라는 작은 교역 창구를 통해 실눈을 뜨고 조금씩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유입된 난학(蘭學, 네덜란드 학문), 즉 의학 중심의 실용과학과 기술, 박물학 등은 일본의 근대적 '지(知)'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데지마는 네덜란드 외에도, 대마도와 류큐(현 오키나와), 에조치(현 홋가이도)와도 교류하고 있었다. 이러한 열린 자세는 근대화 성공의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같은 시기 조선도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다. 국경이 접한 중국과 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과의 제한적 교류가 있었으나, 서양과는 철저히 단절돼 있었다. 당시 조선은 중화사상에 젖어 세계를 보는 시야가 좁았다.

1653년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으나, 당시 조선의 조정은 표류자 36명을 13년 동안 억류시키면서도 서양의 문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풀려난 하멜은 나가사키의 데지마에 귀환해 그 유명한 '하멜 표류기'를 썼다고 한다.

조선은 부산 용두산 부근 10만여 평에 초량왜관을 허용했지만, 일본인들을 가둬두려는 목적이 강해 원활한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다. 초량왜관에는 300~500명의 일본인이 상시 거주해 규모면에서 데지마를 압도한다.

일본이 데지마를 통해 쇄국의 '숨구멍'을 열어놓았다면 조선은 철저하게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열두 차례나 에도를 다녀온 조선통신사의 기록에도 데지마는 보이지 않는다. 양국이 변화와 발전에 눈을 돌리던 시기라 혁신의 현장이나 이야기가 자연스레 화두가 됐을 법한데도 데지마는 언급되지 않았다. 당시 조선 관리의 눈에는 하멜같은 네덜란드인들이 '오랑캐' 정도로 보였던 것이다.

■데지마와 한반도의 기획특별전

나가사키 시는 데지마 유적지에서 '데지마와 한반도의 교류'란 주제로 기획특별전(7월 19일~9월 29일)을 열고 있었다. 데지마가 한반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특별전이었다. 한반도의 동향은 데지마를 거점으로 활동한 네덜란드 선원 하멜과 1823년 데지마에 들어온 독일 의사 지볼트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서구에 알려지고 있었다. 조선(동래)과 데지마는 대마도를 통해 삼각무역을 하였고, 데지마에 수입된 동남아의 생산품이 대마도를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소개돼 있었다. 전시 작품은 일본어와 함께 모두 한글이 병기돼 있었다.

초량왜관연구회 최차호 회장은 "나가사키에 한국인이 많이 온다는 것을 알고 특별전을 연 것 같다"면서 "초량왜관 일부라도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초량왜관 시절 조선에서 대마도의 개항장인 사스나(佐須奈)에 상관을 두고 부산, 나가사키, 오사카를 묶어 일본처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면서 "지금이라도 데지마를 적극 벤치마킹 해야 답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함께 현장을 방문한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시인)는 "데지마는 단순한 역사 유적지가 아닌 것 같다. 근대 유적을 복원해 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도시(나가사키)의 정체성까지 구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데지마는 여러 측면에서 초량왜관이 가야 할 길을 먼저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초량왜관연구회는 오는 11월께 데지마 복원의 핵심 인사를 초청해 '초량왜관과 데지마'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추진키로 했다.


# 준지 데지마 복원정비실장 인터뷰

- "63년째 복원사업 이어와…작년 다녀간 관광객 42만명"

   
준지 마미츠카(馬見塚 純治·54·사진) 나가사키시 경제국 문화관광부 차장(국장급) 겸 데지마 복원정비실장은 데지마 복원 사업의 총괄 책임자다. 5년 전 이 일을 맡은 그는 데지마 복원 과정은 물론 쇄국시대 데지마의 변화와 주변 국제정세, 세계사 상식까지 두루 꿰고 있었다. 지난 7일 데지마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복원사업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얼마나 투입됐나?

"1951년에 시작돼 올해로 63년 째다. 그동안 토지보상과 발굴 조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약 140억 엔(약 1520억 원)이 투입됐다. 이중 90%는 시가지로 변한 토지를 사는 데 들었다. 1996년 지역경제계를 중심으로 '데지마 복원 모금활동추진위'가 설립되어 움직였다."

-데지마 복원은 어디에 초점을 맞췄나?
"데지마는 재건 변화를 거듭했으나 독일 의사 시볼트가 체류한 1820년께의 자료가 비교적 풍부해 그때를 재현했다. 건물 복원은 데지마에서 발굴 조사된 유구나 도면, 회화, 고사진 등의 학술적 분석을 바탕으로 했다. 현재 사적 서쪽의 복원 구역에 건물 10동이 복원돼 있다."

-상관에 일본인과 유녀(遊女·기생)도 출입 했나?

"네덜란드인 20여 명과 함께 일본인 10여 명이 출퇴근했다고 한다. 유녀 출입이 허용됐고, 일꾼인듯한 흑인도 있었다고 한다."(초량왜관은 철저한 금녀 구역이었음)

-옛날 인공섬 주변이 매립되어 원형이 사라졌다. 추가 복원 계획은?

"바다 경관을 막고 있는 건물을 계속 사들일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수로를 되살려 원형을 복원하려고 한다. 2016년 2차 복원이 완료되면 한층 국제화된 데지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방문객은 얼마나 되고, 수입 구조는 어떤가.

"2003년 14만6000명에서 2010년 39만명, 2012년 42만명이 왔다.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수입 구조는 시설 투자비를 빼면 흑자다."

-초량왜관 복원 방향에 대해 조언해 달라.

"자료 정리가 우선이다.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 진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방과 교류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작업이 앞서야 할 것이다."

일본 나가사키=박창희 선임기자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지금 법원에선
대법관 후보 문형배 부산고법 부장판사 등 3명 압축
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자궁경부암 백송이 씨
교단일기 [전체보기]
선생노릇의 무게
의사·변호사 말고 아무 꿈이나 괜찮아
눈높이 사설 [전체보기]
또 메르스…검역망 다시 살펴야
합리적인 병역특례 정비 필요
뉴스 분석 [전체보기]
민생 발목 잡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50% 붕괴
“트럼프 임기내 비핵화” 불씨 지핀 북한
다이제스트 [전체보기]
동아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재지정 外
데이비스컵 테니스 뉴질랜드와 강등전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전체보기]
다이아나와 딜라일라: 사냥의 여신
세이렌과 바이런 : 치명적 유혹자
사건 인사이드 [전체보기]
주부가 유흥주점 출입? 신용카드 사용에 꼬리잡혀
스토리텔링&NIE [전체보기]
돈·물건 대신 사람이 우선인 ‘착한 경제조직’
33년간 상봉 21차례…만남·이별 반복의 역사
신통이의 신문 읽기 [전체보기]
선선한 가을밤 문제집 덮고 온가족 문화공연을
모둠 규칙 만들기와 공론화 과정 비슷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체보기]
반송 Blank 플랫폼?…지자체 앞다퉈 외계어로 이름짓기
차기시장 내달 입주…관치유물로 폐지 목소리도
이슈 분석 [전체보기]
부산시장 진흙탕 선거전…정책 소용없다? 벌써 네거티브 난타전
‘강성권(민주 사상구청장 후보) 파동’ 與 더 커진 낙동벨트 균열
이슈 추적 [전체보기]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 가덕신공항 동의한 적 없다
지역 경제수장에게 듣는다 [전체보기]
정기현 사천상의 회장
통영상의 이상석 회장
취재 다이어리 [전체보기]
지자체 남북교류사업, 농업 분야부터 /박동필
포토에세이 [전체보기]
젖병 등대의 응원
한낮의 달빛 언덕
남해군청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