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잠시 그친 지난 2일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서 김모(69)씨가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고 있다.(조혜령 기자)

장마가 잠시 쉬어간 지난 2일 낮 12시 경기도 수원시 연무동 골목길.

파란색 벙거지 모자를 쓴 김모(69) 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섯바퀴째 동네를 돌고 있었다.

덥고 습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날씨지만 김씨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버려진 폐지가 있는지 골목 구석구석을 살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나와 폐지를 모은다"는 김 씨는 50일 넘게 계속되는 지난한 장마에 이젠 우비도 입지 않고 거리를 나선다.

"우비도 있고 우산도 있지만 우비 입고 비 맞으나 안 입고 비 맞으나 똑같아요. 종이가 물에 젖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 무게 더 나가면 나야 좋지. 허허."

빗물처럼 뚝뚝 흐르는 땀을 훔친 김 씨가 잠시 리어카를 곁에 세워두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이내 텁텁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건축 일을 그만둔 뒤 3년 전부터 폐지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김 씨는 이른 새벽부터 50km이상 걷지만 하루 만 원 한장 손에 쥐기도 쉽지 않다.

"수레에 가득 찰 정도로 모아야 7,8천원 될까 말까야. 밥 먹고 살려면 그래도 나와서 해야지 뭐."

장맛비에 젖은 폐지를 말리고 있는 모습.(조혜령 기자)

오토바이 뒤에 수레를 매달고 폐지를 줍는 장애 3등급의 정모(49) 씨도 끝나지 않는 장마가 야속하기만 하다.

7살 아들의 과자값이라도 벌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일주일에 한두번 일을 나오지만 비가 오면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요즘엔 날씨가 제일 원망스러워요. 간질이 있어서 감각이 오면 일을 안 나가는데 요샌 비가 와서 계속 못나갔어요. 폐지가 물을 먹어 무거워지니 들어서 옮기는 것도 일이네요."

장마 탓에 내다팔 수 있는 종이가 줄어든데다 종잇값도 예전만 못해 주머니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가족들과 떨어져 월세방에서 홀로 살며 폐지를 모아 용돈 벌이를 하고 있다는 박모(64) 씨는 "작년 1kg당 170원 하던 종잇값이 지금은 70원까지 떨어진데다 물에 젖은 종이는 고물상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며 "이것마저도 노인들끼리 경쟁이 붙어 한 달에 20만 원 벌기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관악정책연구소 '오늘'이 지난 2010년 폐지 수집 노인 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0% 이상은 70세 이상의 고령층이며 응답자의 32%는 폐지 수집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한 달에 10만 원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늘연구소 최복준 사무국장은 "비에 젖은 종이는 제 값을 못 받기 때문에 장마철에는 폐지 노인들의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며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을 연계해 주거나 더 나아가 지자체 차원에서 이들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컷뉴스/국제신문 제휴사

※위 기사의 모든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노컷뉴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