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당장 내려줘요."

항공기에 탑승했다가 무작정 내리겠다는 승객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함께 탄 승객은 소지품을 가지고 내린 뒤 보안검사를 새로 받아야 하고 항공사는 수하물 재탑재로 인한 추가 비용 부담 등 피해를 입고 있다.

지난해 6월 25일 부산 김해공항. 부산에서 서울로 가려던 에어부산 BX8810편 승객 150명은 큰 불편을 겪었다. 한 승객이 반려동물 탑승에 따라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승무원을 다그친 뒤 비행기에서 내리겠다고 주장했다.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보안 검사 탓에 항공기 출발은 1시간이나 지연됐다. 공항 화장실에 반지를 놓고 왔다는 승객(지난해 9월 4일)과 제주로 가야 하는데 서울행 항공기를 잘못 탔다는 승객(지난 5월 15일)으로 이 같은 상황은 반복됐다.

대한항공은 올 상반기까지 '자발적 하기(下機)'가 52건에 달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전체 84건의 62%에 해당하는 수치로 올 연말까지 통계가 더해지면 지난해보다 전체 건수가 훨씬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에어부산도 지난해 상반기 4건이던 자발적 하기 사례가 올해 같은 기간 7건으로 배가량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기 요청 이유로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 등 불가피한 사정이 전체 63%를 차지했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37%나 됐다고 항공사 측은 밝혔다. '남자친구와 전화하다 싸워서 만나러 가야 한다' '배정된 좌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임장소가 바뀌었다'는 등의 황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문제는 승객 1명의 하기로 나머지 수백 명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동할 때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승객이 있으면 항공사는 공항 보안 프로그램에 따라 탑승구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승객은 소지품과 수하물을 모두 가지고 내려야 하고, 국정원과 공항공사 직원 등은 하기를 요청한 승객 좌석 주변에 폭발물 등 위험요소가 있는지 정밀 검사를 한다. 재탑승까지 국내선은 평균 1시간, 국제선은 2시간이 소요되고 승객은 목적지에 늦게 도착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항공사는 금전적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 승객과 수하물 재탑재로 지상 조업 비용과 인건비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 손실액이 수백만 원에 달한다고 대한항공은 설명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너무하다고 생각되는 사례도 많다"며 "다른 승객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하기 요청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