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끈끈한 '정치적 동반자'

- 사생활 공격으로 감정 격화

- 범행 닷새 전 흉기 구입하고

- 피해자 동선 파악 준비 치밀

인터넷상에서 벌어진 정치 논쟁과 말싸움에 앙심을 품은 30대 남성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30대 여성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이번 사건은 자신과 생각, 특히 정치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살해하는 끔찍한 결말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사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 백모(30) 씨와 피해자 김모(여·30) 씨는 과거 '이념적 동반자'였지만 피해 여성이 보수로 전향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수년간의 격렬한 설전을 주고받았다. 한때 채팅사이트 아이디까지 공유하던 이들이었지만 자존심을 내건 논쟁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감정이 상하는 욕설을 주고받았고, 급기야 백 씨는 김 씨의 '신상털기'에 나서 채팅사이트 등을 통해 알게 된 김 씨의 사생활을 공개해 성적인 모욕감을 줬다. 김 씨는 해당 사이트에서 미모와 논리를 겸비한 '여신'으로 불려왔기에 백 씨 공격에 분노했다. 이에 김 씨는 백 씨를 향해 경찰 고소를 선포했고, 백 씨는 지난해 9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모방한 사과문을 해당 사이트에 게시하기 이르렀다. 이때부터 김 씨는 '정의의 심판자' 행세를 하며 백 씨를 더 몰아붙였고, 이는 백 씨를 자극했다. 이러한 일들은 백 씨의 진술을 통해 밝혀진 것일 뿐, 현재 백 씨와 김 씨가 정치적인 글을 올린 것은 확인된 바가 없다. 이 때문에 이들이 이념논쟁 및 논리대결을 펼쳤는지, 단순히 상호비방으로 상대를 자극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경찰은 고졸에 특별한 직업이 없는 백 씨가 이 사이트 활동에 상당히 집착했고 비난 댓글이 달리면 화를 참지 못해 동생을 때릴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백 씨가 김 씨의 계속된 공격에 앙심을 품고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백 씨는 범행 닷새 전 흉기를 구입한 뒤 광주에서 부산으로 와 김 씨의 집과 동선을 파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동지'였던 때 김 씨가 백 씨에게 알려준 한 채팅사이트의 아이디를 통해 김 씨의 로그인과 로그아웃 시간을 파악했다. 특히 백 씨는 범행 직후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상의를 걷어올린 사람의 얼굴에 김 씨의 아이디를 넣는 패러디물을 게재하기도 했다.

게다가 백 씨는 검거 당시 범행에 사용한 흉기 2개와 옷가지 등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백 씨가 검거 이후에 범행 동기와 과정 등을 자랑하듯 진술했고, 범행도구를 소지하면서 범행사실을 당당히 여기는 등 죄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