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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피멍 드는 동심 <4> 학대보다 무서운 후유증

몸에 든 멍은 사라져도 마음의 멍은 평생… 인간관계 악영향

  •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  |   입력 : 2013-05-29 19:38:19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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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적 정서학대 정신피해 심각
- 방치된 아이들은 영양결핍 많아
- 유아기엔 분리불안 등 퇴행 증세

- 정서적 후유증 감정조절 어려움
- 일부 자살시도 등 극단적 행동도
- 제때 치료 못 받아 제도보완 필요

2011년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10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8개월간 안방 문을 잠그고 방치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것도 충격이었으나 수개월 동안이나 시체를 내버려두고 태연하게 대입 수능까지 쳤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반전은 따로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모범생이었던 A 군이 어쩌다 어머니를 살해할 지경까지 갔는지 정황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A 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잠을 재우지 않기 일쑤였다. 게다가 야구방망이 등으로 때리거나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전국 1등' '서울대 법대'를 강요하던 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대학에 가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아들 손에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아동 학대의 후유증이 심각하다. 그나마 밖으로 드러나는 폭력과 같은 물리적인 학대로 인한 피해는 시각적으로는 큰 충격을 주는 데 비해 후유증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이보다는 지속적인 정서학대나 물리적 학대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훨씬 크고 오래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A 군 역시 수년간 이어진 어머니의 정서·폭력 학대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방위적인 후유증

아동학대의 후유증은 전방위로 나타나며 크게 신체적인 후유증과 심리적 후유증 및 정신병리로 나뉜다. 신체적 후유증은 외부의 물리적인 가해행위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피부 결손과 같은 가벼운 것에서부터 신체 일부 변형 및 절단, 화상, 골절, 안구 출혈, 장기 파열, 두뇌 손상은 물론 극단적일 때는 사망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방임에서 나타나는 피해는 주로 영양 결핍과 관련된 것이 많다.

지난해 5월께 부산의 학 육교 인근에서 5살 난 아이가 서성이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이 아이를 따라 찾아간 집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6살, 5살과 100일이 갓 지난 막내 쌍둥이 동생 등 4명이 살고 있던 집안에는 장난감은커녕 아이들이 제대로 먹을 음식조차 없었다. 막내들은 더러운 포대기에 쌓인 채 울고 있었지만 6살 첫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특히 이제 100일이 된 막내들은 영양상태가 불량해 얼굴이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유아기에 아동학대를 겪으면 그 후유증이 퇴행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소변을 가리다가도 갑자기 옷에 오줌을 싸거나 자다가 일어나 이유 없이 울고, 분리불안 증세를 보인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피해 증상도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발생한 부산 수영구 D공립어린이집의 학대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다가 일어나서 갑자기 보채는 등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고 호소하고 있다. 해운대 자명병원 소아정신과 김병철 과장은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분리불안이 심각해지면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을까 하는 유기불안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등 다양한 퇴행행동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무너지는 인간관계

아동학대로 인한 정서적인 후유증 중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감정조절과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다. 반복되는 학대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하거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결국 똑같이 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면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소극적인 행동을 보인다.

지난해 2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민주(가명·4)의 엄마는 민주를 임신했을 때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출산한 이후에도 남편의 폭력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엄마는 폭력의 상처와 공포를 잊고자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진 엄마는 민주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민주는 방임되기 일쑤였다. 신고가 됐을 당시 민주는 4살이었지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특히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다.

2011년 대한가정학회지에 발표된 '아동학대 경험과 분노표출이 대인 간 갈등해결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학대를 자주 경험할수록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바람직하지 못한 해결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능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인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논문은 이 같은 결과가 결국 아동학대의 경험이 많은 아동은 갈등을 대화나 타협으로 풀기보다 다툼, 폭력, 분쟁 같은 과격한 양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갈등해결 방식은 결국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불러오고, 따돌림이나 부적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극단적인 정신병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선아(가명·15)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사람들이 다들 자신이 더럽다고 욕하는 것 같다"며 흉기를 가져와 자해소동을 벌이기 일쑤였는데, 지금까지 한 자살시도만 해도 20번이 넘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 결과 선아의 아버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선아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학대의 후유증은 제때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벗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부모는 물론이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동에 대한 치료조차 부모의 동의 없이 강제로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최윤용 대리는 "학대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적어도 15~20번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효과가 있지만 상당수 부모들은 몇 번 해보고 '소용없다'며 거부해 완치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학대에 따른 후유증은 병이 아니어서 상담 등을 꾸준히 받으면 치유될 수 있는 만큼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의 심리적 후유증 및 정신병리

①지능 및 인지기능의 손상

-아동학대로 인해 지능 및 인지기능의 결함이 발생

②중추신경계의 손상

-아동학대가 정상적인 뇌 발달에 방해요소로 작용

③감정 조절 기능의 저하·이상

-아동학대로 아동들은 감정적으로 자기를 조절하는 능력이 저하되며, 특히 부정적인 감정처리 능력이 손상

④자기개념의 손상

-반복적인 처벌 등으로 아동은 실제로 잘못이 없음에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벌을 받는 것으로 여기고 부정적인 자기개념 형성

⑤애착 형성의 붕괴

-생후 초기 발달에서 폭력과 거부에 노출되어 기본적 신뢰감 형성에 결함을 갖게 되며 이후 모든 대인관계에도 악영향

⑥지나친 공격성 및 사회적 위축

-아동학대로 피해아동은 지나친 공격성과 사회적 위축

-집단생활에 적응해 나가는데 심각한 장애 초래, '나쁜 아이'로 낙인되기 쉬움

⑦자학적, 자기 파괴행동

-자살시도 및 위협, 자해 행동 표출

⑧학교 부적응

-집중력이 떨어지고 부산하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학업 수행이 저조한 경우가 많음

⑨정신병리

-심리적 후유증이 반복되면 정신병리현상을 초래 (공격적 행동, 비행, 범죄, 약물 남용, 학교 부적응, 주의력결핍장애, 반항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우울증, 경계선인격장애, 식사장애, 다중인격장애 등)

※자료 :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 대물림되는 학대

- 아동기 폭력 경험하면 자녀에 체벌 빈도 높아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결혼한 기영이(2)와 기준이(1) 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거의 매일 싸웠다. 싸움만 한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물건을 던지는 것은 예사였고 화가 난다는 이유로 뺨과 몸을 사정없이 때리기도 했다. 이들 가족은 일정한 주거지와 직장도 없이 떠돌아 다녀 기영이 형제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는 사치에 불과했다. 부산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신고가 됐을 당시 기영이의 눈 주변에는 큰 멍 자국이 있었고 추운 환경에 오랫동안 방치돼 혈관도 군데군데 터져 있었다. 아이들의 손과 발 역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조사 결과 기영이 형제의 부모는 모두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가족관계의 단절을 경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아빠는 유년기 때부터 야구방망이로 배를 맞는 등 아버지로부터 심한 신체적 학대를 당해왔다.

아동학대 후유증은 보통 내재적인 문제로 나타나지만 외부로 발현되면 또 다른 학대의 연결고리가 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동기의 학대 경험을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부모로부터의 학대를 그대로 대물림한다는 뜻이다.

'2011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전체 학대행위자 2만467명 중 어릴 적 학대경험과 폭력성을 지닌 경우가 1250명(6.1%)을 차지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학대 경험 및 폭력성에 관한 후유증 치료, 양육자의 긍정적인 태도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학대유발의 고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펴낸 '아동학대 현황으로 살펴보는 대한민국 아동의 오늘과 내일'에서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안재진 교수는 전국 5051가구를 대상으로 폭력 경험을 조사한 결과, 아동을 학대한 주양육자 집단의 아동기 폭력 경험(45.7%)이 학대하지 않은 집단(25.1%)보다 월등하게 높다고 밝혔다.

부산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조유진 팀장은 "조사를 해보면 유년기 학대를 경험한 부모는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인식으로 학대에 둔감해지다 보니 또 다른 학대를 자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취재 지원: 아이에스 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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