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 온천장에서 연리지 박물관을 운영 중인 권기철 관장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연리지 나무를 꺼내 '사랑'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박창희 선임기자

- 뿌리 다른 나무 합쳐져 하나로
- 우연히 매료돼 전국돌며 수집
- 자비로 온천장에 박물관 개관

- 뒤엉킨 채 살아가는 모습은
- 인간에 교훈적 메시지 전달
- "사회적 가치 회복됐으면…"

연리지, 사랑나무…. 나무가 사랑을 한다. 피와 살을 아낌없이 섞는다. 껍질이 깎이고 속살을 내주어야만 이루어지는 사랑. 한뿌리에서 둘이 자라나 손 잡고, 두 가지가 만나 한몸이 된다. 어와 둥둥 사랑나무, 나무사랑….

연리지(連理枝)란 말은 성적(性的)이다. 큰사전에는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으로 설명돼 있다. 연리지는 금슬 좋은 부부, 화목한 가족 사이의 사랑, 가슴 저미는 연인들의 사랑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고 보면, 연리지는 참 좋은 말이다.

권기철(51) 씨는 '연리지 애호가'다. 10여년 전 등산을 하다 우연히 연리지를 보고 매료되어 수집광이 되었다. 전국을 훑고 다녔다. 그러다 2010년 2월 동래 온천장에 자비로 연리지 박물관(070-8103-8102)을 열었다. 국내 처음이다. 40여 평의 공간에 4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월세 45만 원, 전기세 5만 원이 아깝지 않다. 본업이 창업 마케팅 컨설턴트라고 하는데, 이것도 창업이 되는 건지 의문이 생긴다.

연리지로 뭘 어쩌려고? 이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권 관장이 준비한 대답은 이렇다.

"하하, 엄청난 이야기가 있어요. 자연이 서로 만나 한몸 하나가 되어 죽을 때까지 함께 사는 모습, 얼마나 오묘한 이치입니까. 주변을 돌아보세요. 이혼, 파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한민국 가정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어요."

실제 우리 사회의 이혼·파혼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연간 33만 쌍이 결혼하고 약 11만 쌍이 이혼한다. 가정붕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산출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연리지는 하나의 대안을 던져준다.

박물관을 연 지 2년 가까이 되자,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방문객 중 이혼을 하려다 연리지의 깊은 뜻을 접하고 마음을 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권 관장이 확인한 것만 8쌍이 헤어지려다 뭉쳤다고 한다.

연리지는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이 되는 개념이다. 그래선지 고전에도 등장하고 영화와 문학, 가요의 소재로도 곧잘 활용된다. 판소리 '춘향가'에 '둥둥 내 낭군… 병치화 난만중은 연리지가 좋을 호…'란 대목이 나오고, 당나라 때 백거이가 지은 '장한가'에는 '하늘에선 비익조처럼 되고 싶고, 땅에선 연리지처럼 살고 싶다'는 구절이 있다. 충북 괴산의 사랑산은 원래 제당산인데, 독특한 연리지 소나무가 발견된 후 이름까지 바꾸었다. 연리지가 세상사에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연리지는 시인의 마음으로 봐야 제대로 보인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시인을 꿈꾸던 권 관장은 2010년 8월 '청목문학'에 '연리지 부부'라는 시를 발표하고 등단했다. 곧 처녀시집이 나온다고 한다.

열망이 통했음인지, 최근 그에게 작은 경사가 겹쳤다. 연리지 박물관이 이달 초 부산시 기네스 공모전에서 '톱20'에 올랐고, 지난주 열린 부산지식나눔축제 전시행사에도 초대됐다.

권 관장의 소망은 소박하다.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연리지를 보고, 느끼고, 깨달아 우리 사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얼마 전엔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편지를 썼다. 부산시에도 노크했다. 가족 해체를 막을 대안으로 연리지를 주목해 달라고.

"연리지 대상(大賞) 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요. 최고의 부부, 연인에게 주는 상인 거죠. 우리 사회가 긍정의 힘을 회복할 때까지 저는 연리지를 꼭 붙잡고 있을 생각입니다."

환하게 웃는 권 관장의 표정이 마치 연리지가 서로 만나 기뻐하는 모습 같았다.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