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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선임기자의 텔·미·스토리 <17> 초량왜관에 '미친' 사람들

미래 부산의 좌표 찍힌 한일 교류 거점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1-07 20:00:58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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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진 화백이 작업 중인 '다시 그리는 초량왜관' 스케치 일부. 오늘날 부산 중·동·서구 일원을 아우른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건축물의 위치 비정 작업' 나서
- 지형적·건축적 실체 규명에
- 상상력 더해 21세기판 그려내
- 도면 위 건축물 위치·명칭 부여
- 일생 일대의 스토리텔링 과제

어떤 마력이 이들을 끌어당겼을까. 초량왜관에 '미쳐도'[狂] 아주 단단히 '미친'[及] 사람이 있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최차호(67) 회장과 김충진(68·서양화가) 학술이사 이야기다.

왜관(倭館)은 조선시대에 입국한 왜인들이 머물면서 외교·무역을 행하던 관사다. 초량왜관은 1678부터 1873년까지 약 200년간 부산 용두산 일대 10만여 평을 차지하고 들앉았던 대규모 왜인촌을 일컫는다.

이들이 밥도 돈도 나오지 않는 '왜관 연구'에 목을 매는 이유는 지난 역사의 시공간 속에 미래 부산의 좌표가 찍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왜관은 부산이 외면해선 안 될 역사이자 스토리의 보고라는 것이다.

김충진 화백은 지난 2일 부산초량왜관연구회와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가 마련한 워크숍에 참석해 '초량왜관 건축물의 위치 비정 작업'을 공개했다. 이른바 '다시 그리는 초량왜관'이다. 2004년 '잊혀진 부산항(1876년)'을 대형 화폭에 담았던 그가 부산항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초량왜관의 지형적·건축적 실체 규명 작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부산항 관련 국내외의 항측자료와 지도, 해도 위에 1903년 원도심(현 중·동·서·영도구) 지도(3500분의 1)를 캡처했다. 변박의 '초량왜관도'(1783년)는 그에게 결정적 참고자료가 됐다. 조감과 투시 기법이 뛰어나고 인문적 통찰까지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문가 고증을 토대로 현장 답사와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21세기판 초량왜관을 그려냈다. 1차 완성된 도면상에는 초량왜관 당시의 도로망과 하천망, 옛 선착장, 원도심의 매립부와 육지부 등이 실감나게 나타나 있다. 재일한국인 3세인 부학주 박사가 초량왜관의 그래픽 복원 및 건축적 재현 작업을 수행한 바 있지만, 이처럼 초량왜관의 실체적 영역을 건축도면 위에 그려내기는 처음이다.

   
최차호 회장
최차호 회장은 이 건축도면 위에 초량왜관 당시의 각종 건축물(최소 65채)의 위치와 명칭,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 회장은 "다양한 사료와 고증, 현장조사를 통해 조각보 짜듯 역사적 현장을 직조하고 있다"면서 "디테일한 작업은 예산이 수반돼야 해 민간이 감당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최 회장은 이날 워크숍에서 '동래부사접왜사도'라는 '국보급' 옛 그림을 '한일 성신의 길'이란 주제로 콘텐츠화해 보자고 제안했다. 동래읍성에서 설문(초량 차이나타운 일대)을 지나 연향대청(대청동)까지 이르는 이 행렬도야말로 초량왜관의 실체를 보여주면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의 약점을 보완하는 부산형 역사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폭넓은 연구조사 과정에서 잊혀진 광복로의 앵천이 확인된 것은 망외의 소득이었다. 앵천(일본어 가쿠라카와)은 대청동 근대역사관 옆에서 흘러내려 대각사 앞, 광복로를 거쳐 영도대교 부근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 앵천에는 초량왜관 시절의 물줄기와 1895년 무렵의 복개 과정, 그후 들어선 일본인 상점과 가스등불을 켠 야점(夜店), 이후 광복과 6·25전쟁 피란민을 받아내고 최근의 문화거리 변신까지 대하 같은 스토리텔링이 흐른다.

   
김충진 화백
6·25때 원산에서 피란 와 부산에 정착해 산다는 김 화백은 "초량왜관 재현 작업이 1차 정리되면 DB로 만들어 시민 모두가 공유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화백의 화실(중구 부산데파트 4층)이 옛 초량왜관의 선착장 앞인 것도 공교롭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초량왜관에 '미쳐' 사는 이들이 있기에 지역사가 이만큼이라도 제 말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초량왜관은 일생일대의 스토리텔링 과제 같다.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chpar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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