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북 안동민속촌 성곽에서 펼쳐진 뮤지컬 '왕의 나라'. 내용도 흥미롭지만, 300여 명이 출연하는 초대형 뮤지컬을 순전히 안동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박창희 선임기자

- 지역 사람 300명 뮤지컬 제작
- 유료공연 불구 관중석 가득차
- 향토 문화 극중에 녹아들어
- 스토리텔링 시대 도래 신호탄

지난 11~15일 5일간 경북 안동은 '왕의 나라'였다. 거리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왕에 대한 이야기였다. 200명의 배우와 100명의 스태프를 대동하고 나타난 왕은, 안동의 역사와 전통문화, 그 속의 사랑과 희망 이야기를 장엄한 뮤지컬로 요리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안동의 문화적 잠재력과 역동성이 번쩍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왕의 나라'는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주최하고 (재)안동영상미디어센터와 영남일보가 공동 주관한 초대형 창작 뮤지컬. 안동의 산수실경(山水實景)을 배경으로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안동 몽진(蒙塵), 홍언박과 여랑의 애틋한 사랑, 안어대동(安於大東·편안한 동쪽의 복된 땅) 민중들의 희망을 담았다. 고려 개국을 도운 삼태사와 안동의 호족 손홍량 같은 역사인물과 놋다리밟기, 차전놀이 같은 안동의 전통문화도 극중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무엇보다 300명 이상이 출연하는 초대형 뮤지컬을 순전히 안동의 문화적 힘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연출, 음악, 의상은 물론, 주연과 조연급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안동(일부 대구) 사람들이다. 철저한 '메이드 인 안동(Made in Andong) 뮤지컬'이다. 뮤지컬 시장의 90%를 서울이 독점하는 현실에서 이는 문화적 사건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300여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은 안동영상미디어센터의 배우 양성, 의상 및 코디네이트, 무대제작 교육과정을 통해 아마추어의 한계를 극복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않은 문화적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총제작비는 12억 원(안동시 7억·경북도 5억 지원). 이 중 인건비가 50%였다. 예산 대부분이 지역으로 환류되는 구조다.

무대가 특별했다. 오후 8시, 안동댐 아래의 안동민속촌 성곽에 둥둥 북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막이 올랐다. 하늘에 별이 빛났고,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은은한 솔향이 번져 나왔다. 무대에 등장한 말이 무대를 뛰쳐나가 객석을 돌아다녔다.

'왕의 나라'는 지난해 첫 공연(무료)에서 4만8000명의 관객을 동원해 지역 뮤지컬의 지평을 열었다. 올해 시즌2 공연은 유료임에도 지난 11일 첫날 공연에 1800명이 객석을 꽉 메우는 등 5일간 9000여 명의 관객이 공연을 지켜봤다. 12일에는 공연 중 폭우로 공연이 중단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안동시는 4년 전부터 문화원형을 콘텐츠화하는 계획을 세우고,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이야기를 다룬 '450년의 사랑'과 '락(樂),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웅부 안동쇼' 등을 선보였고, 지난해 영남일보의 제안으로 '왕의 나라'를 제작했다. 영남일보는 '왕의 나라' 스토리를 발굴해 집중 보도했으며 작품 저작권을 갖고 있다.

김준한 총감독(경북도콘텐츠진흥원장)은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문화콘텐츠가 지역경쟁력의 핵심 화두로 등장했다"면서 "위대한 작품은 위대한 시민이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왕의 나라'가 끝나면 고령군과 우륵의 가야금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가얏고' 제작에 들어간다"면서 "이런 식으로 지역의 원석을 계속 캐내겠다"고 했다.

'왕의 나라'는 스토리텔링이 지역을 먹여살리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인구 17만 명의 지방 소도시가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마법이 360만의 대도시 부산을 긴장시킨다. 부산시와 16개 구·군은 어떤 스토리로 미래를 '텔링'하려는가.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