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의 한 멸치어장막(멸치를 말리는 곳)에서 어민이 텅 빈 발(멸치 건조발)을 쳐다보며 한숨짓고 있다. 박현철 기자

- 죽방렴도… 위판장 개점휴업
- 마른멸치 품귀현상 등 우려

남해안에서 멸치떼가 사라졌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으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멸치떼가 종적을 감춘 것이다. 멸치 어군을 찾지 못한 남해안 멸치잡이 선단도 줄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8일 멸치잡이 선단을 조합원으로 둔 기선권현망수협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어진 폭염으로 바다 수온이 27~28도로 상승하자 멸치 어군이 전혀 형성되지 않고 있다. 멸치는 바다 수온이 23~24도일 때 어군을 형성하는 특성상 예년보다 수온이 3~4도가량 높은 것이 조업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다.

남해안 멸치잡이 선단 47통(1통은 5척)은 주요 어장인 통영 욕지도와 한산도, 거제 장승포, 부산 가덕도 해역 등으로 출어하지만 빈 그물로 회항하는 경우가 많다.

출어에 따르는 유류비와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통당 하루 1300~1400포의 어획량을 올려야 채산성이 맞지만 이달 들어 통당 10포대에 그쳐 업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나마 잡히는 멸치도 상품성 있는 소멸(볶음용)이 아닌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대멸(맛국물용)이다. 금어기(4~6월)를 끝내고 7~10월 본격 어획 시즌인 만큼 최근 업계 부진은 심각한 경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선단은 배를 아예 어장막에 매달았다.

예년 이 시기에는 수협 위판장에 하루 5만~6만 포(1포 1.5㎏)가 위판됐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하루 2만~3만 포로 급감했다가 이달 들어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7월 한 달간 위판고는 10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143억 원보다 36억 원이나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달 들어 폭염이 지속되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돼 위판장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전통 원시어법으로 잡는 죽방렴 멸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해군 관내에는 모두 23개 죽방렴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모두 120t의 죽방렴 멸치를 잡아 7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6월 말부터 이달까지가 성어기여서 전체 어획량의 80%를 잡아야 하지만 예년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

남해안 멸치잡이업계는 국내 마른멸치의 60%가량을 유통시키고 있어 불황이 지속될 경우 멸치 품귀현상으로 이어질 우려까지 낳고 있다.

멸치잡이배 선주인 유욱환(46) 씨는 "멸치가 더위를 먹어 펄 속으로 사라졌는지, 자취를 감춰버렸다"며 "배를 놀릴 수는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출어에 나서고 있지만 손실이 엄청나다"고 하소연했다.

기선권현망수협 관계자는 "이상수온으로 예년에 찾아보기 어려운 불황을 맞아 업계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찬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와 바다 속을 정화하지 않는 한 특단의 대책이 없어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