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전경.

- 수명 다한 1호기 연장 가동, 사고나면 대참사 불안 고조
- 원전을 머리맡에 둔 부산시, 발전 증설에도 불구경하듯
- 안전대책위도 사실상 휴업…환경단체 등 원전폐기 목청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 1년을 맞아 부산·경남·울산지역에서 탈핵·반핵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영향도 있지만 국내 원전이 부산에 밀집돼 있어 불안감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부울경은 '핵 단지'

부산은 원자력발전소가 몰려있어 '원전 단지'로 불린다. 현재 국내에는 모두 21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이 가운데 기장군 장안읍 고리와 효암리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발전소에는 1~4호기와 신고리 1호기 등 5개의 핵발전기가 가동되고 있다. 또 울주군 서생면 등에 신고리 2~4호기 등 3개가 건설 중이고 이외에도 4개가 더 계획돼 있다. 고리원전은 국내 전체 원전 발전량의 2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고리1호기는 지난 2007년으로 30년의 수명이 다했지만 2017년 6월까지 가동 기간이 연장된 상태이다.

이처럼 거대 규모의 원전이 몰려 있다보니 탈핵(脫核) 목소리도 더 높다. 특히 지난해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수도권에는 핵발전소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지역적 박탈감이 탈핵 분위기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0년 서울의 전력소비량은 고리 원전 1~4호기와 월성 원전 2~4호기의 생산량을 모두 합친 원전 7기 분량이다. 현재 서울의 전력 생산량은 전국 대비 0.3%인 데 반해 사용량은 8.6%다. 쥐꼬리만큼 전력을 생산하면서 실제 사용량은 생산량의 30배나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주민 반대가 심한 위험시설인 원전을 서울 인근에 건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연합과 녹색연합 등 40여 개 환경·시민단체로 구성된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서토덕 사무처장은 "한강도 수량이 풍부해 강 하구에 발전소를 지을 수 있다"며 "하지만 서울 시민들이 반대하니까 안 짓는다"고 말했다.

■부산시 '탈핵' 의지 없나

환경운동가들은 원전을 대하는 부산시의 태도에 불만이 적지 않다. 한 환경운동가는 "부산은 고리 원전을 머리맡에 두고 있으면서도 시 차원의 입장이 모호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인근 울산의 예를 들었다. 지난 2004년 신고리 3, 4호기가 설계에 들어갔을 때 울산지역 환경단체들은 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해 국회와 환경부, 산자부 등 관계부처를 항의방문했다. 당시 항의방문단에는 울산시 정무부시장이 포함돼 있었다. 울산시 정무부시장은 정부를 상대로 "과다한 원전 시설로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울산의 산업동력인 산업단지도 위험하다"며 원전 규모를 축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른 환경운동가는 "부산은 그동안 정부의 원전 증설 방침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의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며 "이런 자세를 견지하다 보니 정부가 막무가내식으로 원전을 짓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는 또 지난해 5월 원자력 관련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 수렴과 시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원자력전문가 및 교수 등 10명으로 구성된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으나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이다.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정되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도 현실화가 시급하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원전 반경 20㎞ 이내 주민에게 피난령을, 30㎞ 이내 주민에 대해서는 실내 대피령을 내리는 등 비상계획구역을 단계별로 확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교과부 고시로 비상계획구역을 원전 반경 8~10㎞ 규정해 놓았다. 시 역시 비상계획구역은 원전 반경 10㎞로 정했으며 이 구역 내에는 1만2000여 세대 3만여 명이 살고 있다.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 김세연(금정) 의원이 지난해 비상계획구역을 반경 20㎞로 늘리는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대책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지난해 10월 대통령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별도 발족되면서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반핵대책위 서토덕 사무처장은 "체르노빌은 원전 사고 후 반경 30㎞까지 사람이 살 수 없다"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범위가 너무 현실과 괴리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