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센다이 쓰나미 피해지역. 아래 사진은 후쿠시마 원전 피해지역 이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나가마치의 컨테이너 가설주택.

- 생선류는 가급적 멀리하고 밥할 때 등 먹는 물은 생수만
- 아직도 1~2일에 한번꼴 여진, 비상식량 · 물품 항상 준비

이윤석 씨

엄태봉 씨

"현실에 쫓겨 지내다가도 후쿠시마 이주민들을 볼 때면 그날의 아픔이 떠오릅니다."

일본 센다이 도호쿠대 대학원생 엄태봉(32) 씨는 지난 1년간 매일 격세지감이란 말뜻을 실감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1년 전만 해도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도심에서 외곽으로 달리다 보면 대학원 신축을 위해 마련된 공터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터에 후쿠시마 원전 피해 이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가설주택들만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일본 정부가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해 컨테이너 가건물들을 가져다 놓았다. 가건물들은 끔찍했던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공포와 아픔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원전사고 이후 엄 씨의 생활습관도 달라졌다. 방사능 물질 누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살 때마다 반드시 원산지를 확인한다.

식당에 가서도 식자재 원산지를 가장 먼저 살펴본다. 식료품 파동이 일어나면 식당마다 메뉴에 원산지 표시를 하는 한국과 달리 그가 찾은 일본 식당에서는 어디에서 자란 채소인지 표기하지 않아 께름칙할 때도 있다. 식당 한편에 식재료 박스가 쌓여있으면 살짝 다가가 원산지 확인을 하고 나서야 마음 편히 식사를 하곤 한다.

같은 대학 대학원생인 이윤석(31) 씨도 마찬가지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도 생선류는 가급적이면 피한다. 초밥은 자신의 돈을 주고 사먹은 적이 없다. 수돗물을 받아 마시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생수도 끓여서 먹는다. 밥을 하거나 라면을 삶을 때도 물론이다.

지금도 여전히 1, 2일에 한 번씩은 여진이 발생하는 까닭에 일본의 각 가정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구난제품들을 구비해 놓고 있다. 1년 전 예고 없이 찾아든 지옥 같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이 씨는 "나와 친구들은 헬멧과 손전등, 라디오 등 비상물품 준비는 물론 비상식량도 사놓고 지낸다. 여진이 언제 큰 지진으로 바뀌어 몰아닥칠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다"고 말했다.

재난에 대한 공포는 일본의 결혼율도 증가시켰다. 이 씨는 "재난에 대비해 각종 비상물품을 구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 공포의 순간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미야기현 와타리초에 쌓인 쓰레기 처리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곳에서 지진해일로 쏟아져 나온 폐기물은 120만 t. 도시 재건을 위해 폐기물 처리는 일순위다. 와타리초는 인근 다른 지자체들에 폐기물 처리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방사능 물질에 오염됐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협조 요청을 받은 지자체들의 86%가 폐기물 반입을 거부했다. 1년 전 지진해일로 일본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2252만 t.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이 중 5%만 처리됐다고 한다.

엄 씨는 "일본 국민들의 지진에 대한 공포는 체념인지 망각인지 다소 누그러진 것 같지만, 방사능 물질에 대한 공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극복해 나가는 등 일본 특유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반면 재난에 대한 두려움은 확실히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