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과 한전 간의 송전선로 건설공사 허가 문제가 원점에서 공전을 거듭하며 혈세만 낭비하는 '밑 빠진 독'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9일 한전 직원들이 기장군청 앞에서 송전선로 건설공사 허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집행부, 협의·의견수렴 방관…총선앞둔 의회 '뒷짐'도 문제
- 8일 찬반투표 주민 갈등도

부산 기장군의 송전선로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기장군이 '혈세'로 한전에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금이 4일 현재 1억1500만 원으로 불었다. 한전은 법원의 명령에도 송전선로 관련 공사 허가를 내주지 않는 오규석 기장군수와 기장군 건축과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기장군이 허가 요건이 아닌 '주민 협의'를 조건으로 내세우며 주민대책위의 결정만 바라보는 사이 정관면 주민 간 갈등은 깊어지고만 있다. 기장군 안팎에서는 '기장군에 과연 법치주의 원칙이 작동하는가' 하는 비탄의 목소리가 높다.

당초 765㎸ 송전선로 사업 반대는 오 군수의 '최현돌 전 군수 업적 뒤집기·흔적 지우기'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3선을 한 최 전 군수의 이미지를 지우고 자신의 존재를 빠른 시일 내에 각인하기 위해 군민의 고질적인 민원을 군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했다는 해석이다. 오 군수는 최 전 군수 시절 국가 차원에서 결정된 송전선로 공사뿐 아니라 군기를 바꾸거나 적법한 절차에 의해 허가 받은 폐기물처리장에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민원을 이유로 전임 군수 시절 사업을 뒤집어왔다.

문제는 기장군에 오 군수의 '법 위의 행정'을 제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무소속 기관장은 여당 기초의원들과 각을 세우기 마련이지만 기장군은 사정이 다르다. 무소속 군의원 2명은 오 군수와 각을 세우지만 나머지 새누리당 군의원 5명은 묵인하는 모양새다.

이는 군의원 공천권을 잡고 있는 현직 국회의원이 전임 군수, 즉 최현돌 새누리당 예비후보와 국회의원 공천을 두고 다투는 사이라는 배경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나돌고 있다. 상당수 공무원들도 법에 따라 허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군수의 직무지휘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오 군수가 법치를 외면하고 포퓰리즘에 의존하면서 정관면은 대혼란에 빠졌다. 주민의견을 묻는 방법이 세 번이나 바뀌어 이제는 오는 8일 각 가구 대표가 찬반투표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주민대책위가 정관면 주민 과반의 선임계를 받으면 군수가 허가를 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지난달 28일 일부 주민이 찬반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민원을 넣자 군수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전언이다.

이번 투표를 둘러싸고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투표방법, 투표인단 명단 확보 등 풀어야할 문제가 산적해 아파트가 없는 마을은 마을대표가 임의로 정한 방법으로 주민 뜻을 묻기로 했다. 기장군은 이번 투표에 투표인단 명단을 제공할 수 없다. 법원에서 결정된 사안은 정식 주민투표 안건에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이번 투표는 기장군이 아닌 주민들이 추진하는 비공식 주민투표이다. 법적 효력이 없다는 말이다. 이 와중에 일부 주민들은 투표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투표 후 공사에 반대하자는 의견이 많으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오 군수는 "그건 그때 밝히겠다"고 말했다. 기장군은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다.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