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부터 영도에서 중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서울대생 이기우 씨는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화영 기자

- 희망버스 타고 부산 첫 방문
- "영도 도와야겠다" 신념으로 복학·등록금 마련 미룬 채 저소득층·노동자 자녀 가르쳐

지난해 6월 11일 '희망버스'를 타고 난생처음 부산 땅을 밟은 서울대생 이기우(24·과학교육계열 1) 씨는 아직도 부산을 떠나지 않았다. 광주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공부했지만 "영도를 도와야겠다"는 신념이 새해에도 그를 부산에 머물게 했다.

이 씨는 애초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려고 부산에 왔다. 그러나 네 차례 희망버스를 지켜보며 눈길은 딴 데로 쏠렸다. 희망버스를 환영하는 편과 '절망버스'라며 반대하는 편으로 갈린 영도구민이 안타까웠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에 그는 희망버스에서 만난 대학생 친구 네 명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이렇게 이들은 지난해 8월 말 영도청년회가 지원해준 33㎡가량 사무실에 무료 공부방을 열었다. "발그레 볼을 붉히고 서로 웃는 세상을 만들자"며 이름을 '발그레'로 지었다.

중학생 아홉 명이 공부방 문을 두드렸다. 사교육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저소득층 자녀들이었다. 85호 크레인에서 농성 중이던 노동자의 딸도 있었다. 교사도 학생도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내 흥미를 잃었다. "공부해서 뭐해요. 빨리 돈이나 벌고 싶어요"라며 삐뚤어지기도 했다. 이 씨는 "아이들에게 '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놀면서 하는 공부' 쪽으로 방법을 바꿨다. 학생들이 원하면 수업하고 지루해하면 곧바로 멈췄다. 대신 세계지도를 보며 이웃 나라 얘기를 들려주고, 여러 직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 씨는 지난 학기말시험 후 한 학생이 발그레 웃으며 다가와 "선생님, 전 과목 평균 10점 올랐어요"라고 했을 때의 성취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씨도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었다. 임시 숙소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투쟁위원회 사무실은 겨울이 되자 몹시 추웠다. 따뜻한 집과 어머니의 밥이 그리웠다. 복학도 하고, 등록금도 마련해야 했다. 이 때문에 올해 2월에는 서울에 가려 했다. 그러나 차마 떠날 수 없었다. 감기로 아파 누웠던 날 "어디 아프세요. 우리 수업 안 해요"라고 묻는 학생들 전화에 눈물이 솟구쳤다. 그는 공부방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부산에 남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 씨는 학생비용 부담을 줄이려고 교재 대신 복사물로 수업한다. 운영비는 교사 다섯 명이 매달 3만~4만 원씩 내는 회비로 해결하지만, 형편은 안 좋다. 오는 2월이면 공부방도 비워줘야 한다. 그래도 손은 벌리지 않기로 했다. 다만 교육지원청이나 대기업 지원이 있다면 기꺼이 받기로 했다.

"넓은 곳으로 공부방을 옮겨 더 많은 아이에게 '꿈'을 찾아주고 싶다"는 게 용의 해를 맞는 이 씨의 새해 소망이다. 그는 꿈을 이룬 아이들 모습도 그렸다. 이 씨는 "20년 후 아이들에게 '선생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딱 한마디만 들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